대학 시절 기독교 동아리 IVF의 수련회에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 난 이 땅에 이미 시작됐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나님 나라를 꿈꾸며 부르심대로 살기로 결단하고 가치 있는 일에 인생을 쏟아붓기로 했다. 의미 있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명문대 학위나 고시 합격, 성공한 대기업 임원 등 고지에 올라서는 게 필요하기보다는 내 인생의 소명을 바르게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일 것이다.
많은 실수를 했고 고통을 겪었고 내가 얼마나 미천한지 확인하는 시간으로 생의 대부분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옳은 가치에 대한 헌신 그리고 순수함은 이십 대 다르고 삼십 대 다르고 사십 대가 다르다. 지금 오십 대에는 더 혼란스럽고 무겁고 고단하다. 성공과 발전의 추구가 내 인생에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이 욕망의 사회에서 가정을 지키는 책무를 하면 할수록 마음 깊은 뿌리에서는 불안과 염려가 가득했다.
출판사 편집자의 적은 월급, 무슨 일이든 한 번 해야겠다고 꽂히면 에너지 100퍼센트를 다 쏟는 내 성향, 주변의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 강연을 힘들어하면서 강사 페이가 있어야만 유지되는 가정 살림 때문에 강의 요청이 없으면 또 힘들어지는 마음, 매달 고정적으로 지출되는 어머니 병원비와 소모품 비용, 그리고 일과 병간호 모두 감당해 내기 위한 정신력과 체력의 요구 등으로 하루하루가 마음 편한 적이 없었다. 쉼이 없는 고단한 인생에서 삶의 텐션이 조금이라도 강하게 덤벼오면 균형을 잃지 않으려는 긴장은 더해졌다.
20대의 그 순전한 태도에서 점차 돈 걱정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갈망이 깊어져 갔다. 충분한 수입이 있으면 어머니 병원비뿐만 아니라 개인 간병을 쓸 수 있고, 더 나은 병실 환경을 제공해드리고도 내 휴식 시간을 확보할 수 있을 텐데…. 성공을 무시하면서 흠모고 개인적 안위를 배격하면서 희망했다.
어머니가 의식을 잃은 초창기에 경희의료원에 입원해 계실 때였다. 당시 주치의는 나와 동갑이었다. 한번은 주말 오전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면서 사복을 입은 모습 그대로 우리 병실에 들러 어머니 상태를 잠깐 살펴주었다. 주치의의 자기 환자에 대한 관심이 든든해 보여 고마웠다. 그런데 뜻밖의 말을 건네주었다.
“보호자 분, 왜 그렇게 살아요? 병원에서 어머니께 매달리지 마세요.”
“네? 무슨 말씀인지….”
“회복되는 병이 아니에요. 자기 인생을 사는 편이 나아요.”
“제 인생이요?”
“졸업하면서 상도 받으셨다고 아버님이 말씀하던데 어머니 옆에서 그렇게 간호하며 시간을 보내는 건 낭비일 수 있어요.”
“아, 네….”
대화는 일방적인 조언으로 끝났다. 나는 그 주치의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내 인생이라는 게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보호자 마음에 공감하기보다 세상의 한 자리를 향해 가는 노력과 경쟁이 최선이라는 자기 생각을 전해준 것으로 무시하고 넘겼다. 주치의와 환자 보호자로 만나서 서로의 생각이 다름을 확인한 잠시였을 뿐이라고.
그런데 어머니 돌봄이 20년에 가까워지면서 그 주치의의 말이 가벼운 것이 아니란 것을 종종 경험했다. 세상에서 힘든 일을 계속 감당하며 산다는 게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았다. 내가 안정적인 수입이 들어오는 자리에 있다면 훨씬 편할 수 있는 순간이 많았다. 하필이면 고단하기만 하고 월급은 병원비로 쓰면 남는 게 없는, 책 만드는 직업에서 버텨내야 했다.
월급쟁이로 감당할 수 없어 1인 출판사를 창업해 1년 동안 운영해 봤다. 오히려 돈 걱정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지 목에 칼이 들어오는 듯한 숨 막힘을 경험했다. 당시 판교 공연장 환풍기 붕괴 사고 뉴스를 접하면서 차라리 내가 저 자리의 그 사고 현장에 있었으면, 그냥 이 세상을 떠나는 길을 마주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 만큼 괴로웠고 절박했다. 가족에게 보험금을 남기고 사라지고 싶을 만큼 괴로웠다. 중소기업 사장이 자살하는 마음이 이해됐고, 어떤 식으로든 한국 사회에서 창업해 직원 월급을 지급하는 분들에 대한 존경심이 가득해질 만큼 혼자 사업체를 꾸려 수입을 창출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경험했다.
점점 현실의 여러 지점을 경험하면서 인생의 가치 투자는 허덕임과 시간 낭비의 세월로 점철돼 갔다. 카라바조의 그림처럼 다윗의 얼굴로 해맑게 사회에 나와 골리앗의 얼굴로 피폐해졌다.
그런 이중적인 내 자아가 정화되는 순간이 있다. 바로 어머니 간호할 때다. 어머니 얼굴과 몸의 한 곳 한 곳을 깨끗이 해드리고 호흡과 관절을 안정시키는 순간에 나는 이 땅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기쁨이 충만해졌다. 그 시간에는 돈에 대한 걱정도 사라졌고 안정에 대한 염원도 사라졌다. 외형적으로 커지는 성장보다 내 삶이 숙성되는 성숙을 향한 한 걸음의 시간이었고 다시 삶의 가치를 발견하는 동력이 됐다. 마치 감 농사를 지을 때 작은 열매가 점점 커가다가 어느 순간 성장을 멈추고 쓴맛이 단맛으로 바뀌는 성숙의 시간이 필요하듯이, 어머니 병간호로 청춘과 장년의 시기를 꽉 채운 내 인생도 쓰디쓴 시간에서 달달한 시간으로 변모하는 성숙의 시간이라고 해석했다. 나는 미천하지만 존귀한 아들이고 내 시간은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순간의 연속이라는 뿌듯함이 매번 병간호 시간에 허전한 가슴을 채워 주었다.
병원에 방문해 반나절을 집중해서 케어해 드리고 난 뒤 어머니 손을 잡고 기도하면서 이 땅의 환난 중에 고아와 과부를 위한 삶을 살겠다는 그 소명도 회복했다. 내게 금과 은은 없지만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을 향해 일어설 용기를 회복했다. 병원에서 그러한 시간을 보내고 일상으로 돌아가면 나는 두 아들을 키우는 아빠 모드로 바뀌었다. 아들과 자전거 타며 아빠 얘기를 들려주었다. 외롭고 쓸쓸한 길에 외롭지 않고 쓸쓸하지 않은 인생이 무엇인지를 계속 찾고 있지만, 아빠 역할도 처음이기에 미숙해서 불안해도 성장과 성숙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희망이 생긴다.
황교진
디멘시아뉴스 편집국장
《어머니는 소풍 중》 지음
20년간 식물 상태의 어머니를 돌본 출판편집자, 작가, 강연가
치매와 뇌질환 환자 가족을 돕는 소셜벤처 <실버임팩트> 대표
창업가의 경험으로 스타트업의 성장을 돕는 <비전웍스벤처스> 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