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간호할 때와 달리 요양병원 시스템에서 어머니를 맡기고 돌볼 때 예민한 문제들이 발생했다. 우선 어떤 간병인을 만나느냐가 가장 조바심 나고, 어머니 병상 바로 옆 침대에 어떤 가족이 함께 투병하는지도 민감한 문제다. 성실한 간병인과 함께할 때 안심이 되고 감사하지만, 정말 너무나 환자 간호를 못하는 분이 공동 간병을 맡고 있으면 하루하루가 캄캄해진다. 병원에 오갈 때마다 마음이 힘들다. 그렇다고 개인 간병인을 고용할 수 없는 상황이니, 부디 병실에 자주 방문하고 내가 없는 날 어머니께 간병의 퀄러티 문제로 겪지 않아도 될 고통이 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어머니 바로 옆에 수많은 환자를 만났다. 멀쩡하신 모습이었는데 바로 다음 주에 가보면 돌아가신 분도 여러 번 겪었고, 병원 측에서 보면 블랙컨슈머에 해당하는 보호자도 많이 보았다. 6인실이기 때문에 면회할 때 매너를 지켜야 하는데 온 병실을 1인실처럼 쓰거나 면회 오신 분들이 큰 소리로 찬송가를 부르고 병실이 떠나가라 통성기도를 할 때는 나도 크리스천이지만 다른 환자와 보호자에게 창피하기까지 했다. 그런 분들이 다녀가면 간병인은 꼭 한마디 한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저렇게 실례를 범해도 되냐고.
침상과 침상 사이가 좁아서 다른 면회객이 많이 와 계시면 동선이 확보되지 않아서 어머니 씻기고 치료하는 시간을 보류할 때도 있었다. 자기 가족 면회하겠다고 옆 베드의 환자와 보호자는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의 면회객을 여러 번 접했다. 고통 중에는 다른 사람의 고통을 헤아릴 줄 알 거란 예상은 착각이다. 그런 분은 극소수이고 대부분 자기 가족의 고통만 생각하고 그보다 심한 주변의 다른 환자는 눈으로 보아도 헤아리지 못한다.
다행히 어머니 옆에 천사 같은 권사님 보호자를 만난 적 있다. 그분을 같은 병실에서 만난 한동안은 병원 가는 마음이 비교적 편했다. 권사님은 편찮은 친정어머니를 간병하다가 어머니와 같은 병실의 바로 옆 침상에 배치됐다. 밤에만 공동 간병인에게 맡기고 매일 출퇴근하듯 병원에 와서 간병하고 가셨다. 내 책을 이미 읽었다며 나를 처음 만난 날 설렌다고 하셨다. 그래서 우리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마음도 지니고 계셨다.
다른 날보다 병원에 일찍 와서 권사님과 대화 나누면, 어머니 상태에 대한 걱정으로 긴장된 마음이 편안해졌다. 간병인이 석션을 부실하게 하고 자리를 비우면 직접 어머니를 비롯한 병실의 다른 환자들 석션까지 해주신 천사 같은 분이었다. 어찌 보면 노노케어(노인이 노인을 돌봄)라고 할 수 있다. 권사님도 나이가 든 분인데 노모인 친정어머니를 보살피니 말이다.
권사님이 뜬금없이 내게 어머니 돌본 햇수를 물으셨다. 당시에 17년째라고 했더니, 그동안 들어간 돈이 얼마나 되냐고 궁금해하셨다.
그때 무심결에 뱉은 내 대답은, “돈보다 사랑이 많이 들었는데요”다.
별로 헤아려 보고 싶지 않은 돈 문제는 그야말로 은혜로 감당하고 있었다. 이것을 뭐로 설명하랴. 지금은 종방된 KBS <강연 100도씨>에 섭외된 적이 있다. 첫 번째 섭외 전화가 왔을 때 작가와 사전 전화 인터뷰에서 비슷한 질문을 받아 “경제적인 문제는 하나님의 은혜로 감당해 왔다”고 답했다.
작가가 다시 물었다.
“은혜 말고 다른 메시지는 없어요?”
“없는데요.”
방송에 나가 어머니 모습 보이며 강연하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던 터였고, 없는 사실을 가상으로 꾸밀 수는 없었다. 게다가 연출을 해서 메시지를 만들어 방송사에서 원하는 스토리로 전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섭외되지 않았다. 신앙 고백이 강하다는 이유로 출연 제외됐을 공산이 크다. 책을 낸 초기 1~2년 이후부터는 방송 출연에 마음이 없어 고사해 오기도 했다(KBS <강연 100도씨>는 생방송으로 바뀐 뒤인 2016년 11월 27일에 출연했다. 새로운 작가가 신앙적인 멘트도 허용하며 사실 그대로 전하는 마음을 이해해 주었다. 생방송 강연을 한 그날은 19년 전 어머님이 뇌출혈로 의식을 잃은 날이었다).
방송이나 강연 메시지로 인한 인위적인 보상은 한 점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하나님이 어머니를 부르셔서 병간호 마치는 시점이 올 때까지 하루하루 감당하고 견디는 것이 은혜라고 생각했다. 이 믿음이 없다면 하루도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다. 그렇게 사랑의 힘으로 무겁고 고단한 하루하루를 아무렇지 않게 가벼운 짐 옮기듯이 짊어지고 간다. 다만 어머니께 고통이 없고 나 또한 견딜 힘이 꼭 필요한 만큼 채워지기를 바란다.
믿음의 반대는 불신이 아니라 불안이다. 불안해하지 말고 하루하루 견디는 힘은 사랑에서 비롯된다.
황교진
디멘시아뉴스 편집국장
《어머니는 소풍 중》 지음
20년간 식물 상태의 어머니를 돌본 출판편집자, 작가, 강연가
치매와 뇌질환 환자 가족을 돕는 소셜벤처 <실버임팩트> 대표
창업가의 경험으로 스타트업의 성장을 돕는 <비전웍스벤처스> 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