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진 에세이] 우리 모자의 손
[황교진 에세이] 우리 모자의 손
  • 황교진 기자
  • 승인 2024.01.19 07: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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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불가능한 일을 이루어 가는 수고’
언제부터인가 어머니 손목에 고위험군 환자라는 종이 팔찌가 채워졌다
언제부터인가 어머니 손목에 고위험 환자라는 종이 팔찌가 채워졌다

 

출판사 일을 하면서 신간 마감이 겹치면 어머니 병원에 다녀오는 일정을 조정하기도 했다. 글을 다루는 직업은 정신노동이라 정신적으로 지치면, 퇴근 후 어머니 병간호를 할 기운이 없다. 병원 다녀오는 일정을 하루 당기거나 늦춰야만 했다. 그러나 한 번도 일정을 빠트리거나 소홀히 하지는 않았다. 내가 다녀오는 정기적인 요일을 앞뒤로 조정할 뿐이다. 온몸의 관절을 펴드리는 일, 환자 냄새가 나는 몸의 주요 부위를 깨끗하게 해드리고 위생관리에 신경 쓰는 일은 나만이 할 수 있다. 게다가 간호에 필요한 소모품도 매주 채워놓아야 했다.

6인실의 공동 간병인은 나름대로 역할을 하고 있지만, 환자 한 명 한 명에게 필요한 간병을 하지 못한다. 자신이 간병하는 선을 정해 놓았고, 때로는 간호사와 업무 조율이 안 되어 서로 떠넘기다가 환자가 고스란히 그 피해를 보기도 한다. 가장 심각한 것이 심야 시간대의 석션이다. 야간 업무 간호사는 병실의 환자 석션은 간병인이 자다가 깨어서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간병인은 취침 시간에 자신은 푹 자야지 석션은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서로 떠넘기다가 환자가 감기라도 걸려 있어 자주 석션을 해야 하는데 아무도 해주지 않으면 목에 가래가 쌓여 저산소 혈증이 올 수 있다.

보호자인 나는 그저 기도할 뿐이다. 내가 나서서 간호사와 간병인 사이의 심야 시간 석션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해달라고 요청하기가 어렵다. 높은 금액을 지불하는 개인 간병인을 쓰지 않는 한!

청년기에 집에서 혼자 24시간 간호할 때는 밤에 어머니 석션을 안 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매일 귀를 열어놓고 선잠을 자면서 어머니가 조금만 가래 끓는 소리를 내도 벌떡 일어나 시원하게 석션을 해드렸다. 심지어 낮에 간호할 때도 화장실을 편하게 가지 못했고, 밥은 대충 국에 말아서 후다닥 해치우듯 먹었다. 언제든 어머니 석션을 할 준비와 긴장이 돼 있었다.

우리나라 재활병원은 보호자가 해야 할 일이 많다. 환자가 입원한 기간에 계속 지불해야 할 병원비 마련도 힘들지만, 나처럼 오래 직접 병간호한 사람이 보기에는 허술하고 불안한 요소가 너무 많다. 독일의 재활병원처럼 보호자가 신경 쓰지 않고, 의료진이 30분마다 중환자의 상태를 세심히 살피고 필요한 조치를 빠르게 하는 그런 병원은 한국에서 찾을 수 없다.

그래서 매주 두어 차례 병원에 가서 내가 직접 어머니 상태를 확인하고 간병인이 하지 않거나 할 수 없는 병간호를 하고 온다. 오전에 일찍 가보면 밤새 어머니 석션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숨넘어가는 소리로 견디시는 모습을 종종 봤다. 출근하랴 퇴근 후 바로 병원 가랴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운 아침 출근길에 간호 도구를 챙겨 직장에 가면 온몸이 무거웠다. 게다가 마감 일정 앞두고 꼭 앓는 알레르기 비염까지 심하게 와서 이비인후과 치료를 받고는 컨디션 조절을 해서 퇴근 후 병원에 달려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결과적으로 그런 날은 내가 반드시 병원에 가야 하는 날이었다. 하나님이 오늘 가라고 이일 저일로 날짜를 조정해 주셨다는 생각이 들 만큼.

병원 도착 후 간병인은 손사래를 치며 오늘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했다. 이유인즉 어제부터 병원 건물에 온수가 안 나온다는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오늘 어머니께 가장 필요한 사람이 나란 걸 직감했다.

어머니 얼굴은 다른 날보다 어두웠고 목에서는 짙은 누런 가래가 흘러넘쳐 고여 있었다. 그런 모습을 그냥 두는 간병인이 미웠지만, 하루 이틀 겪는 모습이 아니기에 덤덤히 넘겼다. 우선 충분한 석션을 해드리고 정수기 온수 물을 받으려다 저녁 식사 후 물을 드시는 분들을 생각해, 옆 건물인 신관 화장실로 가서 온수를 확인하고 큰 대야에 물을 받아와 어머니를 씻겼다. 두어 번 옆 건물을 다녀오며 평소와 같이 빛나는 살결로 만들어 드릴 수 있었다. 로션과 아이크림도 바른 후 관절 운동과 Y거즈 드레싱을 마치니 어머니는 평소 컨디션과 얼굴빛을 회복하셨다.

여섯 명의 환자를 돌보는 간병인에게 신관 병동까지 가서 온수를 받아오는 일을 부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나처럼 가족이므로 사랑으로 수고하면 쉽고 간단하고 개운하게 해결될 일이다. 내게는 온수를 얻을 수 있는 것이 다행이지, 옆 건물에 세숫대야 들고 물 길으러 오가는 건 별일이 아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해결하는 수고의 과정에는 감동과 기쁨이 따른다. 그것이 사랑이다. 간호를 마치니 냉수도 끊겨 버렸다. 이제 우리 모자의 결핍을 채우는 유일한 해결책은 기도다.

어머니 손을 맞잡은 내 손을 보니 왠지 아름답단 자화자찬을 하고 싶어졌다. 고생하는 손, 고통을 나누는 손, 예수님이 주신 손. 늘 그렇듯 내 기도는 고통의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간절함에 초점을 맞춘다.

 

황교진
디멘시아뉴스 편집국장

어머니는 소풍 중 지음
20년간 식물 상태의 어머니를 돌본 출판편집자, 작가, 강연가
치매와 뇌질환 환자 가족을 돕는 소셜벤처 <실버임팩트> 대표
창업가의 경험으로 스타트업의 성장을 돕는 <비전웍스벤처스>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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