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진 에세이]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
[황교진 에세이]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
  • 황교진 기자
  • 승인 2023.11.23 23: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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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을 간호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 축복

 

어머니 간병 일기를 홈페이지에 써가던 어느 날 이 제목이 떠올랐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
24년 전에 내가 처음 썼고, 2004년에 출간된 《어머니는 소풍 중》 본문의 한 꼭지 제목이기도 했는데 신기하게도 그 후 노래 제목, 다른 에세이 제목에서 발견됐다. 힘든 일을 겪을 때 스스로를 위로하는 문구로 누구나 떠 올릴 수 있는 말이구나, 싶었다.

집에서 어머니 간호한 지 몇 해가 지났을 때다. 매일 고단한 일상은 내게 당연하고 견딜만한 일상이 되었다. 24시간 긴장의 나날에서 잠깐 휴가를 얻듯 외출하는 날은 매일 심야에 어머니 가게 일을 대신하던 동생이 주일에 나와 병간호를 교대할 때다. 나는 동생에게 어머니를 맡기고 잠깐의 외출 시간을 얻어 교회에 갔다.

보통의 일상에서 유리된 내가 세상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날, 교회 예배와 청년들과 함께 점심을 먹는 모임에 가는 시간은 항상 휴가를 떠나는 것처럼 힘이 난다. 가끔 쓰는 폴로 향수도 살짝 뿌리고, 교회 갈 때만 입는 바지를 꺼낸다. 지난주와 겹치지 않게, 그리고 날씨에 맞게 재킷을 골라 입고 집을 나서는 순간은 군대에서 주일에 교회에 가던 기분과 똑같아진다. 나를 가장 위로하는 시간이 교회 가는 버스 안에서 이어폰으로 찬양을 듣는 시간이다.

마침 성찬식이 있는 주일이었다. 나는 주일에도 거르지 않고 아침에 어머니 침상 목욕을 시켜드리기에 예배 시간에 맞춰갈 수 없었다. 성찬식 직전에 도착해 자리에 서서 주님의 십자가 죽음을 새겼다. 내게 떡과 잔이 오기 전, 눈을 감았는데 감정이 북받쳐 목이 메어 눈물이 흘렀다. 감사하다기보다는 서러운 마음, 섭섭한 마음이 조금 들었으나 차마 따지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 주르륵 몇 줄기 흘리니 마음이 안정되고 개운해졌다.

하루하루 잘 견디고 있지만 종종 내 믿음의 문제에 부딪혔다. 캄캄한 터널의 끝은 도대체 어디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언젠가 끝이 오겠지. 의식이 없는 어머니를 집에서 돌보는 역할에 충실하다 보면 이 모든 세상의 막이 끝날 때 기립박수가 기다릴 것이다. 과거의 서운함, 현실의 막막함 모두 미래의 영광 앞에서 빛이 날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는 다시 싸움터로 출전하는 용사처럼 마음에 갑옷을 두르고 투구를 쓴다.

외박하고 들어오신 아버지는 아내를 잃은 무기력한 심정에 온종일 이불 뒤집어쓰고 계신다. 나 대신 어머니를 간호하느라 힘들었던 동생은 지친 표정으로 자기 방에 들어가 버린다. 동생은 어머니 가게 일을 하느라 밤에 일어나 동대문 광장시장에 나가야 하니, 내가 어머니 걱정 없도록 최대한 힘을 실어 주어야 한다.

그런데 시트가 오물로 엉망이 되어 있는데도 제대로 치우지 않은 동생에게 또 화를 냈다. 어머니 간호에 꼼꼼하지 못한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여동생에게 향하는 나의 짜증. 동생의 삶도 힘들다는 걸 알면서도 내 표정은 쉬이 어두워진다. 아들의 손이 잠시 떠나 있는 시간에 불편했음이 어머니 표정에서 역력하게 보인다. 시트를 잡아당겨 펴드리고 몸을 위로 세워드리고 등을 두들겨드리고 팔다리 관절을 풀어드린 뒤에야 편안한 표정으로 돌아오신다.

도자기 공예를 전공한 동생이 공방을 얻어 자기 꿈을 실현해 가던 중에 어머니 대신 새벽 장사 일에 뛰어들었으니, 얼마나 낙심했을까. 용납하는 것보다 더 어렵고 힘든 것이 있는데 바로 용납하지 못하는 마음을 담고 사는 것이다. 병간호에 서툰 동생을 용납하고 이해하자. 문득 모든 걸 이해해 주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면 무안하고 부끄러워진다.


그래, 아무렇지 않다.
괜찮다!
변함없이 매일 밤샘 간호를 하고
아침이면 또 변함없이 침상 목욕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래도 괜찮다!
매일매일 간호 일과가 버겁게 기다리고 있지만
괜찮다!
예비군 훈련으로 어머니 간호를 잠시 맡기고 훈련장에 다녀와야 하지만
괜찮다!
내 청춘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막막하지만
괜찮다!
내일도 모래도 다
괜찮다!


그렇게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 다짐하며 하루하루 산 것이 20년을 꼬박 채웠다. 어머니 병간호를 시작한 1997년 겨울에 의식 없는 어머니를 2017년 가을까지 계속 간병해야 한다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다. 미리 알 수 있었다면 시작이나 할 수 있었을까? 그래서 내일 일을 모르고 사는 것이 축복이란 생각이 든다.

어제의 고통은 잊고, 오늘을 살고, 내일 일은 모른다. 지금도 그렇게 살아간다. 오늘을 처절하게 살아도 가족의 생명을 책임지는 일만으로 하루 모든 시간을 꽉 채워도, 내일은 좋은 날이 올 거라 기대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살았다. 독박 간호라고 생각하지 않고, 괜찮지 않아도 괜찮은 마음의 힘을 얻은 내 청춘은, 기억 속에서 늘 반짝이고 있다. 교진, 넌 참 귀한 인생이라고!
(일본어 발음 교진[きょじん]은 '거인'을 뜻한다. 이름부터 평범한 소인으로 살 수 없음을 암시했을까.)

 

황교진

디멘시아뉴스 편집국장
<어머니는 소풍 중> 지음. 20년간 식물 상태의 어머니를 돌보며 출판편집자, 작가, 강연가로 활동
중환자 가족을 돕는 소셜벤처 <실버임팩트> 대표
창업가의 경험으로 스타트업의 성장을 돕는 <비전웍스벤처스>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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