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진 에세이] 소극적일 수도 적극적일 수도 없는, 오랜 병간호
[황교진 에세이] 소극적일 수도 적극적일 수도 없는, 오랜 병간호
  • 황교진 기자
  • 승인 2024.01.11 23: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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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며 보호자인, 따뜻하고 싶지만 때때로 혼란스러운
환자와 보호자로 나이 들어가는 모자의 손
환자와 보호자로 나이 들어가는 우리 모자(母子)의 손

일하는 중에 어머니 병원에서 두 통의 전화를 받았다. 병원에서 전화가 오면 가슴이 떨리고 긴장된다. 혹시 또 폐렴이나 결핵일까? 다행히 큰일은 아니었다.

간호데스크에서 온 전화 내용은 병실을 옆방으로 옮기겠다는 거였다. 현재의 중환자 병실은 인공호흡기 등 기계 장치를 달고 있는 환자 위주로 치료하고, 어머니는 기계호흡장치를 하지 않고 있어서 그 환자분들에게 양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사실 중환자 병실은 일반 병실보다 조금 더 넓고 조용하고, 공동 간병인의 환자 돌봄 경력과 전문성이 안정적이어서 그나마 안심이 되는  환경이다. 간호데스크와의 거리도 가깝다. 중환자 병실에서 일반병실을 옮기기로 했다는 건 어머니 상태가 좋아지신 것이 아니다. 기관절개한 환자이고 자주 석션해야 하는 손 많이 가는 환자지만, 기계호흡장치를 하지 않은 것으로 병실 환자의 성격을 구분했기 때문이다.

병원 방침에 따라 병실을 옮기기로 했다. 내 마음만 편하자는 고집을 부리기보다 주변을 배려하고 이해할 줄 알아야 병원과 오래 동행할 수 있다. 이번 주 병원 방문할 때는, 옮긴 병실에서 적응해야 하는 어머니에게 필요한 것들을 체크해야 하고, 그에 따라 나도 새로운 간병인과 주변 환자 및 그 가족들과 적응해야 한다.

퇴근 무렵에 또 병원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이번에 받은 전화는 정말 무슨 일 있는 거 아닌지 잔뜩 긴장했는데, 독감 예방접종에 관한 전화였다. 이번 주 병원에 내원하면 동의서에 사인하기로 하고, 오늘 어머니께 독감 예방접종을 하겠냐는 내용이다.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그러시라고 했다.

접종비는 만오천 원 정도다. 그다지 부담스러운 비용도 아니고 고민할 문제도 아니지만, 매년 맞는 예방접종이 어머니의 고통을 연장하는 건 아닌지 슬며시 혼란이 밀려왔다. 그렇다고 거절하는 건 도리도 아니고 보호자 아들로서 트라우마가 남을 선택이다.

잘한 거야, 절대 잘한 거야, 생각하면서도 16년차 환자와 보호자로 마주하는 상황이다 보니, 어느 순간 적극적인 간병과 소극적인 간병의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내게 어머니를 위해 어떻게 기도하냐고 묻는다. 하나님이 왜 그런 고통을 허락하셨는지, 나라면 기도도 할 수 없을 거라고 공감해 주시는 분도 많다. 내 기도는 간단하다. “고통을 없게 해주세요”다. 기적처럼 회복되는 것도 고통이 없어지는 것이고, 내가 최선을 다하는 간병의 손길로 편안하게 하루하루 지내시는 것도 고통이 없어지는 것이고, 하나님의 때에 천국으로 불러주시는 것도 고통이 없어지는 것이다. 장기 간병에서 내 기도는 고통이 없도록 하는 데 맞춰져 있다.

한결같이 고통 없이 지내시는 데 기도제목을 맞추면서, 고통이 많아 보이는 어머니 모습을 전보다 자주 마주할 때마다 혼란이 밀려온다. 단순하게 생각하자고 하면서도 상황은 복잡하기만 하다. 이러한 상황에 정답은 없다. 책임지는 사랑이 무엇일까, 지금 난 어머니의 고통을 없애는 데 어떻게 손발을 움직여야 할까만 고민한다. 그것이 최선의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정답은 내가 신을 만났을 때 물어볼 질문으로 남겨 둔다. 내가 생각하고 실천하는 '책임지는 사랑'이 가장 선한 과정과 결과로 드러날 것이라고 믿는다.

새벽에 출근해야 하는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 아직 초겨울인데도 새벽 기온이 차가웠다. 한겨울에 입는 두꺼운 패딩을 껴입고 싶어진다. 정장을 고수해야 하는 회사라서 코트가 아니면 어울리지 않는다. 심한 일교차로 인해 출퇴근 때만 정장 위에 패딩을 입고 다닐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10월에 벌써 한겨울처럼 대비한다는 게 어색하다.

16년째 의식이 없는 어머니께 예방접종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의견을 종종 듣지만, 내겐 몹시 어색한 말이다. 낫지 않는 중병을 장기 간병하는 보호자 마음은 선택과 판단의 기로에서 늘 어렵고 힘들다. 사랑으로 선택했다고 하면서도 내일을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 우리 모자는 언제 이 고통에서 구원받을까? 보이지 않는 끝을 기다리며 터널 한복판을 터벅터벅 걸을 때는 어둡고 추운 일들이 수시로 쓰나미처럼 덮쳐온다. 그래도 계속 움직여야 한다. 일하고, 가정을 돌보고, 병원에서 어머니를 케어하고, 병원비 문제를 해결하고.... 움직이지 않으면 살 수 없고 고단하게 움직여도 문제는 항상 그대로이고 더 깊어지기까지 한다. 이런 인생을 살게 될 줄 몰랐지만 이런 인생이기 때문에 마음은 늘 낮고 가난해진다. 그래서 세상에 아파하는 많은 사람의 신음소리가 더 잘 들린다.

 

황교진
디멘시아뉴스 편집국장

어머니는 소풍 중 지음
20년간 식물 상태의 어머니를 돌본 출판편집자, 작가, 강연가
치매와 뇌질환 환자 가족을 돕는 소셜벤처 <실버임팩트> 대표
창업가의 경험으로 스타트업의 성장을 돕는 <비전웍스벤처스>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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