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없는 마을 2 _전 세계 치매 마을의 롤 모델, 네덜란드의 호그벡
한국에 없는 마을 2 _전 세계 치매 마을의 롤 모델, 네덜란드의 호그벡
  • 황교진 기자
  • 승인 2024.01.15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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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리가 아닌, 존엄한 인생의 평범한 일상으로 마지막까지
치매 노인 돌봄을 재정의한 마을
마을 중앙의 분수 광장에서 담소를 나누는 주민들 모습 /
마을 중앙의 극장 광장(Theaterplein)에서 담소를 나누는 호그벡 주민 모습 ⓒ Be Advice / De Hogeweyk / Vivium Zorggroep

네덜란드는 치매 선진국 가운데 특별한 나라다. 노인 돌봄 분야의 ‘최초’라는 수식어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1997년에 치매 환자의 편의공간 ‘알츠하이머 카페’를 탄생시켰고, 2008년 세계 최초로 치매 환자가 거주하는 마을 ‘호그벡(Hogeweyk)’을 설립했다.

이 호그벡 마을의 아이디어에서 착안해 세계 각국에 치매 마을이 생겨났다. 2019년 미국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에 세워진 ‘밀턴 빌리지(Milton Village)’는 호그벡의 아이디어를 변형한 지역사회 통합 주간보호센터다. 2020년 코로나19 유행에도 프랑스는 호그벡 마을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온 치매 마을 ‘랑드 알츠하이머’를 오픈했다.

국내는 서울 용산구가 경기도 양주 백석읍 기산리에 호그벡 마을을 지향하는 펜션 형태의 ‘공립 치매 전담형 노인요양시설’을 추진했으나 주민 반발과 양주시의 건축 불허로 소송에 패소해 백지화됐다. 현재 해당 부지는 캠핑장 등 용산구민 휴양소로 변경하는 활용안을 추진 중이다. 경남 거창군은 올해 6월 공립 치매 전담형 노인요양시설 개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실제로 호그벡 마을과 같은 치매 어른의 행복한 여생을 위한 놀라운 공간이 세워질지는 지켜봐야 알 수 있다.


 

ⓒBe Advice / De Hogeweyk / Vivium Zorggroep
호그벡 마을 중심 광장 ⓒBe Advice / De Hogeweyk / Vivium Zorggroep

 

호그벡 마을은 어떤 곳

호그벡은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 북쪽 외곽의 작은 마을이다. 4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모든 건축물이 치매를 앓는 주민과 그들을 돌보는 직원을 위한 맞춤 공간으로 계획됐다.

축구장 3개 크기인 1만5,000㎡의 마을은 27채 가옥과 극장·커피숍·슈퍼마켓·레스토랑·공원·미용실 등의 편의시설을 갖췄다. 도시로 나가지 않아도 편리하고 안락한 생활이 가능하다. 마을 모습 자체는 일반 마을과 다를 바 없다. 마을 주민은 치매를 앓고 있음에도 그 생활 모습은 네덜란드의 여느 평범한 마을과 차이가 없다. 치매 환자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조금의 불편함이나 눈치 볼 필요 없이 살아간다.

이곳 주민들은 마을 슈퍼마켓에서 직접 장을 보고,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가족과 지인을 만나 여유를 즐기고, 동아리 회원들과 함께 클래식 음악을 듣기도 한다. 마을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광장에는 종종 콘서트가 열린다. 광장 분수대 주변에 앉아 햇빛을 쬐는 주민들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린덴바움 나무가 심어진 길목을 걷다 보면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공원과 연못이 펼쳐져 있다. 텃밭에서 채소를 키우고, 교회에서 예배를 본다. 다른 입주자와 공방에서 악기를 다루고 그림을 그리며 취미 생활을 즐긴다. 가격표가 없는 물건을 슈퍼마켓에서 사고, 별도로 돈을 지불하지 않는다. 미용실에서 편하게 단장하고 피곤하면 친숙한 인테리어의 자기 침실로 돌아가 잠을 청한다.

 

마을 슈퍼마켓에서 직접 장을 보고 요리한 가정식을 즐긴다 /
마을 슈퍼마켓에서 직접 장을 보고 요리한 가정식을 즐긴다 / 이본 반 아메롱겐 테드 강연 갈무리

 

창립자, 이본 반 아메롱겐(Yvonne van Amerongen)

이본 반 아메롱겐은 1983년 노인 요양원에서 일하기 전에는 정신질환병원과 재활센터에서 일했다. 1992년 그녀는 전통적인 요양원 호그벡의 케어 매니저로 일하면서 중증 치매 환자를 위한 환경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비전으로 현재 중증 치매를 앓는 188명 이상의 노인을 위한 27채의 주택이 있는 호그벡 마을이 세워졌다. 반 아메롱겐은 호그벡 프로젝트 리더이자 중증 치매 환자를 위한 탁월한 치료, 생활 및 복지의 비전가로 유명해졌다. 현재 Be Advice의 컨설턴트로서 치매 환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전 세계 의료기관, 정부, 건축가 및 프로젝트 개발자의 자문을 부탁받고 있다. Be Advice는 Vivium Care Group의 회사로 노인의 새로운 돌봄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호그벡 마을을 설립한 소유주이기도 하다.

우리가 지금 이 질문을 받는다면 어떻게 답할 것인가? “당신은 인생의 마지막 몇 년을 병원과 같은 멸균 시설에서 보내고 싶습니까? 아니면 걸어서 쉽게 갈 수 있는 슈퍼마켓, 펍, 극장, 공원이 있는 마을에서 보내고 싶습니까?”

대답은 분명하게 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 현실에선 선택권이 없다. 반 아메롱겐이 30년 전 암스테르담에서 호그벡 치매치료센터 개발을 추진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아이디어는 전통적인 치매 요양원에서 위험한 이탈로 간주됐다. 호그벡의 구체적인 특징을 살펴보기 전에 창립자인 반 아메롱겐의 테드(TED) 강연으로 호그벡의 설립 초기 시점을 탐구해 보자.

 

이본 반 아메롱겐의 테드(TED) 강연 모습 / 이본 반 아메롱겐 테드 강연 갈무리

 

_평범한 마을처럼 보이는 호그벡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과 가까운 작은 마을인 호그벡에는 27채의 집에 한 집당 6~7명 입주해 있습니다. 식당이 있는 쇼핑몰에는 술집, 슈퍼마켓, 탁구장, 골목, 영화관이 있죠. 평범한 마을로 보이지만 이곳은 요양원입니다. 심각한 치매를 앓고 있는 사람들이 살고 있어요. 도움과 관리가 항상 필요한 어르신들이죠.

치매는 끔찍한 질병이고 우리는 아직 어떤 치료법도 발견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치매는 전 세계적인 큰 문제입니다. 정치인을 비롯한 모든 사람이 고통받는 병입니다.

요양원 대기자 명단을 보면 치매에 걸려 요양원에 오는 사람 대부분이 여성이에요. 보통 여성들은 가족을 돌보는 것에 익숙해서 남편이 치매에 걸렸을 때 그를 돌보는 데 자기 인생을 소진하죠. 하지만 반대의 경우, 남성은 아내를 돌보는 것이 쉽지 않아요.

치매는 뇌에 영향을 미치고 치매가 발병한 뇌는 혼란을 느끼죠. 치매 환자는 지금이 몇 시이고 눈앞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는 혼란 때문에 긴장하고 우울해하며 호전적으로 돼요.

_자기 가족에겐 추천하고 싶지 않은 요양원

전통적인 요양원을 보세요. 저는 1992년 호그벡 요양원의 관리자였어요. 우리는 일하면서 이구동성으로 우리 부모님은 이곳에 맡기고 싶지 않다고 했어요. 친구들은 물론, 나 자신도 오고 싶지 않은 곳이었어요.

어느 날 우리는 계속 불평하고 불편을 감수하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떠올랐어요. ‘이 문제에 대해 뭔가 해야 해. 우리가 이곳을 책임지고 있잖아. 우리 부모님도 기꺼이 보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해.’

우리는 요양원에서 입원한 어르신들이 전통적인 요양원 환경을 혼란스러워한다는 것에 주목했어요. 치매 어른은 병원 환경, 즉 가운을 입은 의료진, 병원 유니폼을 입은 의료활동가들에 둘러싸여 있어요. 그분들은 이곳에서 살고 있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해요. 당장 떠나고 싶어 하죠. 다시 집으로 달려갈 수 있는 문을 찾으려 해요.

_평범한 삶을 원하는 치매 환자들

호그벡에서의 매일이 축제인 할아버지 / 이본 반 아메롱겐 테드 강연 갈무리

우리는 전통적인 요양원에서, 뇌에 혼란을 겪는 분들에게 더 큰 혼란을 주는 일을 해왔어요. 혼란에 혼란을 더하는 게 우리 일이었죠. 그 일은 환자들이 원하는 것이 아니었어요. 치매 환자들은 삶을 원했고 치매를 다루는 우리의 도움이 필요할 뿐이었죠. 사람들은 평범한 집에서 살기를 바랐어요.

병동에서 살고 싶어 하는 이는 아무도 없어요. 평범한 가정을 원하고 부엌의 오븐에서 나는 냄새를 원하고 자유롭게 음식을 먹고 음료를 꺼내 마시는 집을 원해요.

이분들에게 필요한 것, 바로 그것을 제공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렀죠. 요양원을 집처럼 바꿔야 하고 한 병동에 15명, 20명, 30명이 한꺼번에 살면 안 돼요. 가족처럼 6명, 7명 소그룹으로 함께해야 해요. 마치 친구들과 함께 사는 것처럼요. 사람들을 배치할 때도 그들의 삶의 방식을 고려해 친구가 될 확률이 높은 사람과 함께 살 수 있게 해야 맞죠.

_저마다의 라이프 스타일을 존중

그래서 우리는 모든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물었어요. '아버지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이죠?', '어머니는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사셨죠?', '그분들 삶은 어땠습니까?' 우리는 7개의 라이프스타일을 발견했어요.

먼저 격식 있는 라이프 스타일이에요. 이 라이프 스타일의 어르신들은 서로를 대할 때 일정 거리를 둬요. 이분들의 하루 리듬은 느즈막이 시작해서 느즈막이 끝나죠. 다른 그룹보다 클래식 음악을 선호해요. 좋아하는 메뉴는 전통적인 더치식보다 프랑스 가정식에 가까워요.

한편 전통적인 라이프 스타일의 분들은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잠들어요. 손으로 평생 열심히 일해온 분들이죠. 자기 사업을 하셨거나, 농장을 경영했거나, 상점을 운영해 온 부류에요. 농부였던 B씨는 매일 아침 일을 하러 가야 한다며, 종이봉투에 점심 도식락을 담고 담배 한 개비를 준비하세요. 담배 한 개비는 그가 누리는 유일한 사치죠. 그는 점심을 먹고 꼭 그 담배 한 개비를 피웠어요. 호그벡에서 사망하는 날까지 그는 작은 오두막에서 담배 한 개비의 사치를 즐겼어요.

저희 엄마는 문화적 라이프 스타일이에요. 현재 호그벡에서 산 지 6주 되셨죠. 여행과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했고, 미술과 음악에 관심이 많았어요. 엄마가 좋아하는 풍의 벽지와 그림, 좋아하시는 음악이 나오는 집에 사세요. 엄마는 산책을 좋아했어요. 호그벡 마을에서 편안한 산책을 즐기며 지내세요.

그 밖에도 많은 라이프 스타일이 있어요. 이것이 우리가 만든 호그벡 마을의 핵심이에요. 인간은 그룹을 지어서 살고 비슷한 생활방식을 가진 이들과 살아가길 원해요. 인생은 그 안에서 풍성해지죠.

_우리가 시작한 것, 사교적인 생활 제공

이본 반 아메롱겐 테드 강연 갈무리

우리는 저마다 재미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살기를 원해요. 치매에 걸린 사람에게 필요한 사교적인 생활을 제공하는 마을, 호그벡에서 구현했죠. 치매 환자도 집 밖에 나가 쇼핑을 원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해요. 술집에서 친구들과 맥주 한잔하고, 매일 매력적인 여성을 보기를 원하는 분도 계세요. 그는 여성들에게 신사답게 행동한 후 받는 미소에 행복해해요. 술집에서 춤을 추기도 하죠. 호그벡에서 그는 매일이 축제에요.

어떤 치매 어른은 식당에서 친구들과 와인 한잔하거나 식사하며 삶의 축복을 원해요. 저희 엄마는 공원 산책을 하며 벤치에서 지나가는 행인이 옆에 앉기를 바라세요. 그리고 삶에 대해, 연못의 오리에 대해 대화를 나누세요. 치매 어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이런 사회적 작용이에요.

'당신은 이 사회의 일부분이며 사회에 소속돼 있다. 치매 말기의 환자일지라도!' 이 생각을 늘 가지실 수 있게 해드리죠.

제 사무실 창문에서 보는 풍경이에요. 한 여성분이 걸어오고 다른 여성분이 다른 방향에서 걷다가 중간에서 만나요. 제가 아는 분들이에요. 그들은 산책하다 만나서 대화하지만, 그 대화는 이해하기 어려워요. 하지만 저는 그들이 서로 이해한다고 생각해요. 손짓으로 대화 나누는 것을 보며 좋은 시간을 보내시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들은 인사하고 서로의 방향으로 걸어가요. 치매에 걸려도 삶에서 원하는 것들, 저는 그 원하는 바를 이룬 어른들을 보고 있어요.

_치매 말기 환자들에게 자유와 안전이 보장된 곳

호그벡에서 일하는 전문가와 봉사자들은 치매 증상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잘 아는 이들이에요. 이곳의 전문가들은 각자의 전문성을 발휘하되 환자들의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을 침해하지 않는 선을 지켜요.

이들이 이렇게 일하기 위해서는 관리 시스템이 필요해요. 치매 노인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해요. 어찌 보면 대담한 관리시스템이죠. 전통적인 요양원에서와 다른 방식을 적용해야 하니까요.

우리는 이 방법의 가능성을 보았고 어디에서나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부자들을 위한 시스템이 아니에요. 호그벡은 다른 요양원에 비해 예산이 더 많이 들지 않아요. 시에서 주는 예산만을 사용하죠.

호그윅에서 담배 한 개비의 행복을 누리며 마지막 인생을 보낸 할아버지 / 이본 반 아메롱겐 테드 강연 갈무리
호그벡에서 마지막까지 담배 한 개비의 행복을 누린 할아버지 / 이본 반 아메롱겐 테드 강연 갈무리

 

_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르게 생각하기

호그벡은 다르게 생각하는 것에서 시작했어요. 내 앞에 있는 환자들을 보며 그분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기에 호그벡이 가능해졌어요. 그리고 ‘다르게 생각하기’는 미소 짓는 것처럼 비용이 들지 않아요. 중요한 것은 선택의 문제죠. 돈을 어디에 쓸 것인지에 대한 당신의 선택! 저는 항상 이렇게 말해왔어요.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다!’ 호그벡 프로젝트는 어느 국가든 어디에서든 가능해요.”


 

평범한 일상을 돌려받은 사람들

요양원에서 치매 어른을 돌보다가 호그벡 마을의 비전을 세운 반 아메롱겐의 뜻대로 호그벡의 치매 환자에게는 평범한 일상이 펼쳐져 있다. 폐쇄된 병동이 아닌, 살아온 환경과 낯설지 않은 편안한 환경에서 치매 환자의 행복한 생활을 영위할 공간이 열렸다. 호그벡 마을은 그렇게 188명의 중증 치매 환자의 보금자리가 됐다.

층이 낮고 아늑한 27개의 네덜란드식 주택은 입주민의 취향에 따라 네 가지 스타일로 나뉜다. 전통적인 네덜란드 스타일, 격식 있는 스타일 등 입주민이 살아온 환경과 가장 비슷한 모습을 구현한 가구와 벽지, 식기 모양과 음악까지 세심한 신경을 썼다. 집마다 6~7명의 치매 환자와 간병인이 함께 지내며 평범한 가정집 생활을 이어간다. 침대가 다닥다닥 붙은 요양원 다인실과 달리, 호그벡의 집은 거실, 주방, 개인 침실, 세탁실 등의 공간으로 분리돼 있다. 요리나 세탁 등 집안일은 간병인이 하지만, 어르신들은 밥 짓는 냄새를 맡고, 세탁기가 조용히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가장 편안하고 안전한 공간에서 사는 느낌을 받는다. 다양한 인테리어 테마 중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를 수 있다.

호그벡의 이용료가 궁금하다. 요양등급 판정을 받아 마을에 입소한 치매 노인은 소득에 따라 적게는 월 500유로(약 72만 원), 많게는 2,500유로(약 362만 원)를 부담한다. 소득이 높을수록 높은 금액을 낸다. 네덜란드의 66세 이상 노인은 모두 노령연금을 받는다. 50년 이상 거주했거나 소득 활동을 한 노인라면 부부는 각각 814유로(118만 원), 노인 1인은 월 1,180유로(약 170만 원)를 받기에 개인 부담이 큰 편이 아니다. 특히 네덜란드는 OECD 국가 중 복지 수준은 4위, 노인 빈곤율은 덴마크와 함께 가장 낮다. 노인을 위한 나라, 노인이 행복한 나라로 네덜란드를 꼽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 마을에서 치매 환자는 길을 잃을 염려도 없다. 마을 어딘가에 항상 집으로 안내하는 이웃이 있기 때문이다. 호그벡은 치매 환자 외에도 의사·간호사·자원봉사자 250명이 이웃으로 함께 산다. 하얀 가운을 벗고 일상복을 입고 슈퍼마켓 직원, 미용사, 공원 관리인 등으로 치매 환자와 함께 생활한다. 일반 요양시설과 달리 환자에 대한 개입은 최소화한다. 환자가 길을 잃거나 혼란을 느낄 때만 도움을 준다. 환자의 요구에 따라 함께 산책을 하거나 장을 보는 것을 도울 순 있다.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곳곳에 카메라가 설치돼 있으며, 관리진은 1시간마다 모든 환자의 동선을 파악한다. 모든 출입문에는 자물쇠를 달지 않는다.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침대 위 병원식이 아닌, 식탁에 둘러앉아 평범한 식사를 즐긴다. ⓒBe Advice / De Hogeweyk / Vivium Zorggroep

 

생의 마지막까지 존엄을 지키는, 사람 중심 공간

호그벡의 철학은 ‘환자가 아닌, 사람이 중심인 곳’이다. 호그벡에서는 ‘음악 치료’라는 말 대신 ‘음악을 즐긴다’라는 말을, ‘병동’ 대신 ‘집’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환자복을 입은 주민은 찾아볼 수 없으며, 간병인도 흰 가운을 입지 않는다. 1970년대부터 표준이라고 설정한 전통적 의료서비스 모델에서 벗어나, 치매 환자도 평범한 일상을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환경을 제공했다. 나이나 건강 상태에 상관없이 누구나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

과연 내가 치매에 걸린다면, 인생 마지막 시기의 자유, 의미, 사회생활을 어떻게 영위할 수 있을까?

새해에 끔찍한 뉴스가 있었다. 청주의 한 요양원에서 샤워실에 갇힌 치매 노인이 2층 샤워실 창문을 통해 탈출하려다 추락해 사망했다. 요양원 측은 혹시 모를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평소 샤워실 문을 잠그도록 했으나, 직원들이 자물쇠를 매번 채우는 일을 번거로워해 원장이 경첩고리에 자물쇠를 걸어만 놓도록 지시했고, 한 치매 노인이 채워지지 않은 자물쇠를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가 사고가 난 것으로 조사됐다. 그렇게밖에는 관리할 수 없었던 요양원 측도, 그곳에서 지내다 사고를 당한 치매 노인도 모두가 불행한 현실이다.

호그벡 마을을 대한민국에 설립하기는 요원해 보인다. 네덜란드와 프랑스는 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치매 마을을 세웠다. 우리는 설립 허가 단계에서 이해관계 충돌에 부딪쳐 좌초됐다. 이러다가 그 끔찍하게 사망한 노인의 불행한 사고가 내 가족의 일이 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노인 빈곤과 고독, 치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사회 공동체 의식이 필요하다. 수많은 나라가 호그벡을 모델로 치매 마을을 세워 운영하거나 계획 중이지만, 우리 의식은 공동체를 위한 정서적 지원의 공감대부터 기초공사를 해야 한다.

 

호그벡의 햇살을 즐기는 치매 어른 ⓒBe Advice / De Hogeweyk / Vivium Zorggro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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