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정] 소설 속의 치매 이야기 14
[김은정] 소설 속의 치매 이야기 14
  • 최봉영 기자
  • 승인 2018.02.22 09: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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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경남대 국어교육과 교수)

14편 - 어머니가 저렇게 된 게 누구 때문인데 -이혜경의 <길 위의 집>

얼마 전 딸아이의 말 한마디에 감동한 적이 있었다. 객지에서 대학 생활을 하는 딸아이가 안쓰러워 나는 종종 찾아가곤 한다. 그에 비해 딸아이는 집에 자주 오지 않기에 그 이유를 물었더니 ‘엄마가 집인데’라고 답하는 것이었다. 엄마가 오는 게 곧 자기가 집에 가는 거나 마찬가지 아니냐는 뜻이었다. ‘엄마가 집’이라는 것은 치매를 다룬 소설의 대표적 주제 중의 하나다. 나는 딸아이와의 대화에서 왜 많은 소설 작품들에서 어머니를 집으로 형상화하고 엄마와 집의 관계에 그토록 집중하는지를 실감했다.

이혜경의 <길 위의 집>은 엄마를 집으로 형상화한 대표적인 작품이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서울의 아들 집에 왔다가 집을 못 찾는 사건이 생기고, 이후 어머니를 찾기 위한 가족의 피말리는 시간이 이어진다. 얼핏 이는 우리에게 상당히 낯익은 이야기 구조로서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떠올리게 한다. 다만 <엄마를 부탁해>가 결국 어머니를 찾지 못한 상태로 끝나는 작품인 반면에 <길 위의 집>은 극적으로 어머니를 찾게 된다.

이 작품에서 엄마는 집이다. 아들 넷, 딸 하나의 오남매에게 엄마는 마음 속의 집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실재하는 집과 마음 속의 집은 각각 다른 의미로 작용한다. 이 작품은 이 두 가지 집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이루어진다. 그 첫째는 바로 아버지 길중 씨가 직접 짓는 ‘집’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이다. 아버지는 그 어떤 집보다 튼튼한 집을 짓고 싶어 하고, 그 집을 물려받을 아들들을 더 강하게 키우려는 욕구가 있다. 반면에 아들들은 아버지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아버지의 집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아버지와 아들 간의 ‘집’을 둘러싼 이러한 갈등이 첫 번째 이야기의 중심을 이룬다.

두 번째는 어머니를 상징하는 ‘마음 속의 집’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이다. 어머니 윤씨의 삶은 한 마디로 널뛰기와 같은 삶이었다. 처음 결혼 생활부터가 그러했고, 모진 시집살이가 그러했다. 남편에게 정을 받지 못하며 살아온 시간들이 윤씨에게는 ‘마음 둘 곳 없는 한줌 검불의 가벼움으로 치솟아오르며 널 위에 있는 듯 현기증나는’ 세월이었다.

술에 취해 밥상을 엎었던 남편은 잠들었다가 윤씨를 끌어 당겼다. 그렇잖아도 아프던 이에, 밥상머리에서 벌였던 남편의 익숙한 광포함에 더 욱신거리던 이 때문에, 몇 번이고 찬물을 옹물고 잠들지 못한 윤씨였다. 자다 깬 남편에게 그걸 알릴 틈도 없었다. 이 이를 뽑아야지, 뽑아야지 하면서 윤씨는 옷을 벗기웠다. 그 날, 그 통증과 더불어 뽑힌 이였다. 지붕 위로 던져진 그 이의 기억을 가지고 살 마음이 없었다.

폭압적인 성격의 아버지 길중 씨와 어머니 윤씨의 결혼 생활은 바로 이렇게 폭력이 일상화된 것이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폭압을 벗어나고자 하는 아들들의 반항을 막아 주려는 과정에서 어머니 윤씨의 내부는 더욱 심하게 망가지고 있었다. 아버지의 폭력성을 누구보다 싫어하지만 묵묵히 그것을 견디는 ‘크레믈린’이라고 불리는 큰 아들 효기, ‘피가 뜨거워’ 현실의 삶을 견디지 못하는 둘째 아들 윤기가 사고를 저지를 때마다 어머니 윤씨는 그 사실을 아버지 길중씨가 알게 될까 봐 전전긍긍한다. 아들을 감싸고 걱정하는 어머니의 이 마음은 치매를 앓게 된 상황에서도 변함이 없다.

와그르 깨진 유리창이 보이고, 뚝뚝 피흘리는 팔뚝이 보이고, 프릇프릇 멍든 얼굴이, 기억이, 갈가리 금간 유리찬 너머에서 조각난다. 그게 효기던가, 윤기던가, 가만, 걔들이 무슨 일이지? 걔들이, 어서 걔들한테 가봐야 할텐데.

어머니는 환각과 실제가 뒤섞인 치매의 섬망 증상을 겪는다. 기억이 뒤죽박죽 섞여 어느 순간이 먼저인지 인지하지 못할 뿐 아니라 자기가 지금 있는 곳이 어디인지도 모르는 순간에도 어머니 윤씨는 오직 자식들을 걱정한다. 혹 자식들이 위험하지나 않을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어서 돌아가야 할텐데......

이러한 어머니의 마음을 잘 아는 자식은 딸 ‘은용’뿐이다. 그녀는 이 작품의 중심적인 이야기를 전달하는 화자이기도 하다. 그녀와 달리 아버지와 아들들은 제대로 된 이해와 관심을 보여 주지 못한다. 이혜경의 <길 위의 집>이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와 특히 다른 점 하나는 바로 이 어머니의 치매 증상을 대하는 아버지와 아들들의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엄마를 부탁해>가 어머니에 대한 가족 각자의 그리움과 반성이 주를 이루었다면, <길 위의 집>은 아버지와 아들들의 서로에 대한 책임 전가가 주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준엄한 질책이 작품의 하이라이트라고도 할 수 있다.

너무들 하는구나.
그토록 낯선 거리를 두려움으로 헤매었을 한 사람이 지금 겨우 돌아왔다. 속 파먹힌 거미처럼 누워, 오랜만에 발 뻗고 잠들려 하고 있다. 그런데 그 잠마저 빼앗으려 하다니. 그걸 모른 체 내버려 두고 있다니.
은용은 방문을 열었다. 효기와 윤기가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길중 씨는 잘 안 피우던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중략) 조금도 언성을 높이지 않고, 노여움의 밀도를 흐트리지도 않고, 외딴 섬에 언제 누가 세웠는지 모를 입상들처럼 단독적으로 앉거나 선 남자들을 빙 둘러보면서, 손가락으로 짚어가면서, 은용은 말했다.
「너, 너, 너. 조용히 해, 이 개새끼들아!」

이 부분은 작품의 줄거리 상 마지막 부분이다. 어머니가 겨우 돌아온 후 거실에 앉아 서로의 잘잘못을 따지며 언성을 높이는 아버지와 오빠들에게 딸 은용이 분노를 표출하는 장면이다. 은용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집안 살림을 도울 정도의 유약하고 순종적인 삶을 살아 왔다. 그녀의 이러한 성격을 감안하면 분노를 표출하는 이 장면은 엄청난 사건이다. 그리고 이 은용의 분노에는 억압된 가부장제 질서에 분노하는 작가의 시각이 담겨 있기도 하다.

「난 치마 안 입어요. 죽어서라고 남자 옷 입고 가야 다음 세상에 남자로 태어나지」
윤달이 들어 수의를 짓던 날, 윤씨의 말이 귓전에 울렸다. 전에 없이 결연한 말투.(중략)
은용은 어안이 벙벙해서 윤씨를 바라보았다. 윤씨의 입에서 여자로 태어난 것 한탄하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었던가. 아니었다. 윤씨는 오히혀 전통적인 부덕을 은용에게 가르쳐왔다. (중략) 속바지 속저고리가 각각, 치마 대신 바지가, 원삼 대신 도포가 한 번 더 만들어졌다. 바람 좋고 볕 좋은 날, 윤씨는 수의를 꺼내 바람을 쏘였다. 그때마다 윤씨의 입가에 보일 듯 말 듯 만족스러운 웃음이 스치는 걸, 은용은 알 수 없는 마음으로 바라보곤 했다.

여자가 ‘백호’의 태몽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이유로 평생 팔자가 셀 것이라는 저주를 견디며 살아온 어머니, 자신에게 내려진 저주를 감내하며 숨 한번 크게 쉬지 못하고 살아온 어머니, 유약한 성격에 평생 제대로 된 거짓말 한번 할 줄 모르던 어머니, 그런 어머니의 마지막 소원은 다시 태어나면 남자로 태어날 수 있게 남자 수의를 준비해 달라는 것이다.

<길 위의 집>에는 어머니의 다양한 기억의 혼란이 나타나지만 그 대부분은 이미 죽은 지인을 장에서 보았다거나, 농삿일의 시기를 엉뚱하게 기억하는 등 사소한 것들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치매 증상’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게 아니라, 무엇이 어머니를 저렇게 만들었나 하는 점에 집중하여 추적해 나간다. 그 물음에 대한 해답이 바로 이 작품의 메시지이다.

아마 그 일차적인 답은 어머니를 때린 아버지, 모진 시집살이를 시킨 시어른들, 혹은 어머니 속을 무던히도 썩힌 아들들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딸 은용의 분노가 보여 주듯이 본질적인 답은 우리 사회의 가부장적 질서이다. 터무니없이 강요되는 억압의 질서 속에서 어머니의 희생과 견딤이 바로 치매를 통해 분출된 것이다. ‘어머니’는 왜곡된 사회 질서에 희생된 ‘여성’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한 것이다.

이 작품의 제목인 ‘길 위의 집’은 바로 어머니 자체를 나타낸다. 그것은 양지 바른 곳의 굳건하고 튼튼한 아버지의 집이 아니라 바람 찬 길 위에 놓인 집이다. 어머니에게 얼마나 많은 견딤이 있었는지 그 희생을 생각해 봐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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