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개발 바이오텍, 위축된 민간자본 시장에 '직격탄'...정부 '해결사' 역할해야
신약 개발에 나선 국내 바이오벤처업계가 투자 혹한기를 맞아 어려운 시장 환경에 직면한 가운데 기업의 생존 전략과 경쟁력 강화를 위한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시간이 마련됐다. 위축된 민간 자본시장에 직격탄을 맞은 신약 개발 바이오텍이 데스밸리를 넘기 위해 정부가 해결사로 나서야 한다는 요구도 나왔다.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KoNECT)은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공동으로 29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드래곤시티 호텔에서 ‘2024 KoNECT-MOHW-MFDS 인터내셔널 콘퍼런스(KIC2024)’를 개최했다.
이번 행사는 제약·바이오기업 개발자, 임상 연구자, 규제기관, 임상시험수탁기관 등 국내외 1,500여 명의 관계자가 참석해 신약 개발 및 임상 개발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는 글로벌 회의다.
첫날 오전 세션에서는 국내 바이오텍을 비롯해 정부기관과 학계, 투자업계 등 전문가들이 모여 대내외적으로 힘겨운 상황에 처한 K-바이오의 미래를 그려보는 토크쇼 형식의 토론회가 열렸다.
키노트 발표를 맡은 문한림 메디라마 대표는 “우리 K-바이오가 2017년에서 2022년 사이 큰 성과를 이뤘다”며 한국 바이오산업이 세계에서 약진하는 모습을 담은 자료를 제시했다.
하지만 “2022년이 아닌 2027년에 이 그래프를 그려본다고 하면 실망스러운 결과가 나올까 봐 걱정이 많이 된다”며 “현재 상황은 아직도 투자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고 우려했다.
지난 몇 년 새 자본 시장이 급속히 경색되면서 국내 바이오업계에 대한 투자가 많이 줄었고, 정부 부문에서조차 연구개발(R&D) 예산이 일률적으로 삭감되면서 바이오산업 자체가 혹독한 시련을 맞이했다는 것이다.
문 대표는 “많은 바이오회사가 생존하기 위해 정말 노력하고 있다”며 “이 여파가 앞으로 몇 년 더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어두운 전망을 내놨다.
이에 대해 좌장을 맡은 백승재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는 “바이오 회사는 돈을 태워서 앞으로 나가야 한다”며 “그동안은 민간 영역에서 했지만 이제 공공 영역에서도 많은 나라에서 성과들이 나오고 프로그램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자금과 경험이 부족한 국내 초기 바이오텍의 경우 민간 시장에서의 업계 분위기가 여의치 않자 국가신약개발사업단(KDDF)이나 범부처재생의료기술개발사업단 등 정부기관에서 지원하는 프로그램에 대한 의존도가 상당히 높아진 형국이다.
김순남 국가신약개발사업단 본부장은 “K-바이오가 굉장히 어려운 시기라고 하는데, 이럴 때 가장 많은 역할을 하는 게 정부 지원일 것 같다”며 이와 관련된 국가 신약개발 사업과 과제 지원, 성공 사례 등에 대해 소개했다.
김 본부장은 “최근 바이오벤처들이 직접 해외 파트너링에 나서며 신약을 개발하고 있다”며 “이러한 역량을 바탕으로 신약 개발을 끌고 가는 국내 바이오 벤처가 많기 때문에 점점 많은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서 “바이오벤처가 글로벌 신약 개발을 위해 단순 라이선싱이나 기업공개(IPO) 말고 직접 개발해서 승인을 받는 것까지 욕심을 낼 수 있을 것 같다”면서 “M&A를 통해 회사를 키우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인호 범부처재생의료기술개발사업단장은 “재생의료라는 게 희귀질환을 타깃으로 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하는 전략이 좋겠다”고 조언했다.
글로벌 헬스케어 펀드를 운용하는 김명기 LSK인베스트먼트 대표는 현재 시장 흐름에 대해 “유동성이 상당히 떨어져 있다”며 “이는 상장사든 비상장사든 마찬가지다. 시장이 굉장히 양극화돼 있다”고 진단했다.
또 “국내 기업들도 임상을 진행하거나 성과를 내는 기업들의 경우 주가도 많이 오르고 충분한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다”면서도 “그 외의 기업들은 시장에서 소외된 상황”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도 “해외 투자자들이 보는 한국 시장은 앞으로도 업사이드가 굉장히 좋다”며 “국내 기업들이 해외 기업보다 상대적으로 굉장히 저평가돼 있다”고 낙관적으로 바라봤다.
투자금 회수(EXIT)에 대한 조언도 덧붙였다. 그는 “예전에는 하나의 파이프라인만 가진 기업들에게는 백업이 없기 때문에 프로젝트가 실패했을 경우 기업의 영속성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며 “엑시트 툴이 M&A밖에 없으니까 예전에는 부정적이었던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최근에는 신디케이트를 만들어서 투자하는데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를 투자자들이 많이 고민한다”며 “우리가 투자하려는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이 M&A에 적합한지 아니면 IPO를 통해 엑시트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예전보다 많이 하고 있다”고 했다.
또한 “대부분 비공개 M&A나 퍼블릭 마켓에 오픈이 안 되니까 잘 모르는데 투자자 입장에서 보면 M&A가 예전보다 많이 늘고 있다”며 “이제 M&A도 하나의 중요한 엑시트 툴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한국거래소(KRX)에서 상장 심사를 담당했던 이성길 김앤장 전문위원은 본인의 경험을 토대로 코스닥 시장의 기술특례 상장에 대해 조언했다.
김 위원은 “올해 거래소 상장 정책을 더듬어보면 심사가 약간 엄격화됐다는 평가가 많이 나온다”며 “바이오 기업으로서 시장에서 각광받는 기업들이 상장에 실패하면서 심사가 좀 까다로워진 게 아닌가 하는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거래소의 기본적인 정책은 기술력이 높고 미래 성장 잠재력이 높은 바이오 기업에 대해서는 상장을 시켜주겠다는 게 정책”이라며 “각 기업은 자기 회사의 기술력과 시장성을 어떻게 입증하느냐가 상장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심사는 기업이 계속 생존 가능한 지와 내부적으로 통제 장치가 잘 갖춰졌는지 두 가지를 본다”며 “바이오벤처 기업의 경우 내부 통제보다는 어느 정도 기술성을 가졌는지가 심사의 포인트가 된다”고 전했다.
기술성을 인정받는 세 가지 조건에 대해서는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 글로벌 빅파마나 국내 대형 제약사에게 의미있는 수준의 라이선스 아웃 ▲국내 대형 제약사나 글로벌 빅파마와 의미 있는 수준의 공동 임상이나 공동 연구 ▲안전성이나 유효성이 어느 정도 인정되는 임상 결과로 규정했다.
김 위원은 “임상 2상이나 3상에 있으면 인증된 게 아닌가 보지만 실제 거래소 심사에서는 그 단계가 중요하지 않다”며 “비록 전임상이나 임상 1상이라도 회사가 어떤 식으로든 유효성이나 안전성을 입증할 수 있고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으면 기술성이 있다고 본다”고 했다.
더불어 “거래소 심사 시 마지막 기술평가 기관에서는 바이오 기업들의 최근 기술 트렌드, 그다음 임상에 대한 전문 지식 그리고 개별 기업들의 파이프라인에 대한 정보들을 종합적으로 아울러 기업에 대한 평가나 심사가 이뤄진다”며 “이런 부분들을 거래소 심사자나 평가기관들이 적절하게 정보를 알고 있어야 제대로 된 평가를 하고, 그래야 좋은 기업들이 IPO 트랙을 타서 더 큰 성공의 길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제안했다.
다음 순서에서는 김봉태 HK이노엔 연구소장 사회로 이종서 앱클론 대표와 박현숙 세포바이오 대표가 바이오텍 입장으로 발언했다.
이종서 대표는 앱클론이 처음 라이선스 아웃(L/O)에 성공한 경험을 들어 “계속 임상까지 끌고 갔으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지금도 전임상에서 기술 이전하기를 잘했는 생각이 든다”며 “당시 재무 상태나 경영 환경에서 국내 임상을 하는 게 힘들었는데 마치 릴레이 계주처럼 적절한 파트너가 잘 넘겨받았다는 생각이 든다”고 술회했다.
기업 경쟁력에 대해서는 “신약 개발을 할 때 국내를 기준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며 “전 세계가 다 열려 있다고 보고 경쟁 약물보다 약효가 동등하거나 조금 우수한 정도가 아니라 MOA가 완전히 다르거나 차별성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공동 연구는 앞으로 모든 한국 바이오 기업들의 생존 전략이 될 것 같다”며 “우리가 잘하는 부분만 잘하면 되지 않을까가 아니라 마지막 시장이 무엇이고 환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폭넓게 생각하는 데 국제 공동연구나 파트너가 큰 도움을 줬다”고 소개했다.
박현숙 대표는 “기술 개발에 봄·여름·가을·겨울이 있다면 회사를 시작하고 봄에 해당하는 시기에 VC(벤처캐피털)로부터 투자를 받았다”면서 “세포 치료제에 대한 임상 승인을 받고 나서도 후속 투자가 이뤄지지 않아서 여름과 가을을 견뎌낼 물 대기를 받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세포바이오는 범부처재생의료기술개발사업단의 지원을 통해 위기를 넘겼다. 박 대표는 “재무 구조가 좋지 않아서 국가 지원금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서도 “어려움이 안팎으로 컸지만 포기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또 정부 부처 및 투자기관에 “돈만 투자하는 게 아니라 하나의 계란이 부화해서 병아리가 되고 닭이 될 때까지 품어서 성장하기까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며 “기업이 성장하는 단계별로 지원이 지속적으로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앞서 열린 이번 콘퍼런스 개막식에는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 박주민 국회 보건복지위원장, 노연홍 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 정은영 복지부 보건산업정책국장,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 등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