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 “레켐비·키선라, 유전적 취약성에도 임상 참여...결과 안 알려”
NYT “레켐비·키선라, 유전적 취약성에도 임상 참여...결과 안 알려”
  • 이석호 기자
  • 승인 2024.10.28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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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 참가자 274명, 유전적 취약성 모른 채 임상 시험 참여” 문서 입수
ApoE4 유전자 보유 시 부작용 큰데 검사 결과 안 알려...‘비밀유지조항’ 윤리 논란
현지시간 10월 23일자 뉴욕타임스 1면 / 뉴욕타임스 홈페이지
현지시간 10월 23일자 뉴욕타임스 1면 / 뉴욕타임스 홈페이지

 

‘알츠하이머 임상 시험에 대한 제약사들의 비밀(Drugmakers Had a Secret in Alzheimer’s Trials)‘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24일(현지 시간) 이와 같은 헤드라인을 단 탐사보도를 1면에 대서특필했다.(링크)

이 기사를 작성한 월트 보그다니치(Walt Bogdanich·74세)는 과거 월스트리트 저널(The Wall Street Journal)에 재직하던 1988년을 포함해 2005년, 2008년까지 모두 세 번의 퓰리처상을 수상한 탐사보도 전문 노(老)기자다.

NYT의 이번 특종 보도는 보건당국의 허가에도 약물의 효능과 부작용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초기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레켐비(Leqembi, 성분명 레카네맙 Lecanemab)‘와 ’키선라(Kisunla, 성분명 도나네맙 Donanemab)‘의 임상시험 과정에 대한 윤리적 문제를 다뤘다.

레켐비는 일본 에자이(Eisai)와 미국 바이오젠(Biogen)이 공동 개발한 항아밀로이드 치료제로, 알츠하이머병을 일으키는 원인 물질로 추정되는 ‘아밀로이드 베타(Aβ)’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뇌 혈관의 부종(Edema)이나 미세출혈(Hemorrhage)이 발견되는 ‘아밀로이드 관련 영상 이상(Amyloid-related Imaging Abnormalities, ARIA)’이 부작용으로 빈번하게 발생한다.

같은 항아밀로이드 항체 계열 약물인 키선라 역시 같은 부작용을 수반한다. 지난 8월 영국과 네덜란드 연구진이 발표한 논문(링크)에 따르면, 투약군 10명 중 약 3명이 ARIA-E 및 ARIA-H를 경험했다.(레켐비 21.5%, 키선라 36.8%, 위약군 각각 9.5%, 14.9%)

또 참가자 중 각각 레켐비 투약군 6.9%, 키선라 투약군 13.1%가 부작용으로 치료를 중단한 것으로 확인됐다.(위약군은 각각 2.9%, 4.3%)

특히 알츠하이머병 병리 특징인 ApoE4 유전자를 지닌 환자에게서 ARIA 부작용의 발생률이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에 이목이 쏠린다. 유럽의약품청(EMA)의 약물사용 자문위원회(CHMP)에 따르면, ApoE4 유전자를 1개(이형접합형)만 보유해도 발병 소지가 최소 3배 증가하고, 2개(동형접합형)를 보유하면 최대 12배까지 높아진다.

NYT 보도에 따르면, 에자이는 임상 시험에 참여한 모든 이들에게 ApoE4 유전자 검사를 한 뒤 그 결과를 비밀로 했다. NYT는 총 274명(동형접합형)이 본인이 유전적으로 취약하다는 사실을 모른 채 임상 시험에 참여했다는 문서를 입수했다고 밝혔다.(총 957명은 이형접합형)

이 중 한 명은 세 번의 약물 투여 이후 51개의 미세출혈이 발생해 2022년 9월 사망했는데, 부검 결과 약물 부작용이 사망 원인으로 밝혀졌다. 또 다른 고위험군 참가자 한 명도 숨졌고, 이외에 100명 이상이 뇌출혈이나 뇌부종을 겪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외에도 NYT는 연구를 중단한 피험자의 결과에 “회복되지 않음”으로 기록되는 등 아직 알려진 사실이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과정은 키선라의 임상 시험에서도 발견됐다. 이번 보도에 따르면, 키선라의 제조사인 일라이 릴리(Eli Lilly and Company)는 특정 유전자를 보유한 임상 참가자 289명에게 뇌 손상에 취약하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기로 했다. 릴리에 따르면, 이 중 수십 명이 ‘심각한’ 뇌출혈로 분류한 증상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두 약물의 임상 시험 과정에서 참가자들은 특정 유전자를 보유하면 약물 투여에 따른 뇌 손상 위험이 더 높다는 사실을 고지받은 채 유전자 검사를 받았다. 하지만 비밀 유지 조항에 따라 그 결과를 알려주지 않는다는 동의서에 서명해야 했다. NYT는 이 같은 결정에 윤리적 문제가 있다는 전문가 의견도 제시했다. 유전자 검사 결과 동형접합형인 경우, 본인이 부작용과 위험성을 우려해 임상 시험에 참여하지 않을 수 있는 권리를 침해당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레켐비(Leqembi, 성분명: 레카네맙 Lecanemab) / 바이오젠
레켐비(Leqembi, 성분명: 레카네맙 Lecanemab) / 바이오젠

 

이번 NYT 보도가 일으킨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미국 비영리 소비자단체 퍼블릭 시티즌(Public Citizen)의 보건연구그룹(Health Research Group)의 이사인 로버트 스타인브룩 박사(Dr. Robert Steinbrook)는 미국 식품의약품청(FDA)과 연방 보건복지부(DHHS) 산하 임상연구보호국(OHRP)에 레켐비와 키선라의 임상 시험 수행과 비밀 유지 조항을 승인한 기관 검토 위원회(IRB)의 조처를 조사할 것을 촉구했다. OHRP는 미국 내 임상 시험을 감독하는 기관이다.

그는 “연방 규정에 따라 개인을 연구에 참여시키기 전에 정보 제공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요구 사항은 연구 대상자를 위한 근본적인 보호”라며 “알츠하이머병 시험의 비밀 조항에 대한 폭로는 정보 제공 동의의 원칙이 훼손되었음을 시사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상자가 뇌 손상 위험이 더 높다는 것을 알았다면 시험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을 수도 있다”며 “이는 잠재적인 참여자가 알고 싶어할 정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레카네맙과 도나네맙은 모두 뇌 부종과 출혈을 포함해 상당한 안전 위험성을 능가하지 않는 임상적 이점을 가진 약물”이라며 “FDA는 두 약물을 모두 승인해서는 안 됐다”고 비판했다.

한편, 최근 국내 정치권에서도 보건당국이 부작용 문제에 대해 충분한 검토 없이 레켐비를 졸속으로 허가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전진숙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3일 종합 국정감사에서 레켐비의 허가·심사 과정이 식약처 법정 자문기구인 중앙약사심의위원회(중앙약심) 회의를 열지 않는 등 성급하게 진행됐다고 질타했다.

전 의원은 레켐비의 허가를 보류한 유럽연합(EU)과 호주의 사례를 들어 “외국에서는 부작용이 염려돼 허가를 보류하는데 일단 약을 써보고 안정성 평가를 하겠다고 하는 게 말이 되냐”며 “도대체 레켐비의 효능성을 믿는 건지 아니면 한국에자이를 믿는 건지 정말 잘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이에 오유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식약처장)이 “시판 후 조사를 철저히 하겠다”고 답변하자 “이 임상 시험을 미국에서 했을 때 3명이 죽었다. 시판 후 국민이 죽으면 누가 책임지나”라고 질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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