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인 판매로 결론짓고 검토 과정은 허술하게 건너뛴 직무 유기 아닌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진숙 의원(더불어민주당)은 국정감사에서 오유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에게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레켐비(성분명: 레카네맙) 허가 과정에서 중앙약사심의위원회(이하 중앙약심)를 거치지 않은 것을 질타하며 유럽과 호주에서 허가가 보류될 만큼 불안한 약을 제약사 자료만 신뢰하고 짜맞추기식으로 허가한 것 아니냐고 추궁했다.
오유경 식약처장은 허가 절차상 문제가 없었으며 사회적 위중성을 충분히 고려했다지만, 시판 후 부작용으로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 책임지겠냐는 전 의원 질문에 시판 후 조사로 위해성 관리를 하겠다는 허울뿐인 답변을 했다.
국정감사에서 오 처장은, 2022년 식약처에 레켐비와 작용 기전이 같은 알츠하이머병 치료제인 아두헬름(성분명: 아두카누맙)의 허가 신청이 들어왔을 때 그 위해성과 유익성 비율을 판단하기 어려워서 중앙약심을 열었지만, 레켐비는 동일 제약사에서 유익성을 높였다고 하여 (중앙약심 없이) 바로 허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아두헬름은 문제 소지가 있어서 전문가 자문이 필요해 중앙약심을 열었고, 레켐비는 제약사 자료만 검토한 채 중앙약심을 생략했다고 해명한 것이다.
온전한 치료가 아닌, 병증 진행의 27%를 지연한다는 레켐비는 특히 치매 발병 빈도가 높은 여성에게 효과가 있는지 아직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 아울러 ApoE4 유전자가 전체 인구의 20%로서 그 비중이 다른 나라보다 큰 한국인에게는 ApoE4 유전자로 인한 고위험 부작용 때문에 투여가 매우 조심스러운 약이 레켐비다.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동시에 전 세계 수많은 알츠하이어병 환자가 기다리는 치료제에 대해 미 FDA의 허가 과정에서 충격적인 일이 발생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23일, 레켐비와 키선라(성분명: 도나네맙)의 임상시험에서 제약사가 피시험자들에게 사망에 이를 만큼 심각한 위험성에 관해 미리 알리지 않았다고 보도했다(클릭).
미국 소비자단체, “아두헬름 승인은 무모한 짓” 비난
과정이 어떠하든 승인만을 향해 직진해 온 치매 약은 한국 식약처의 졸속 허가에 앞서 미국 FDA도 졸속 승인의 역사가 있다. 우선 아두헬름의 승인과 퇴출 과정을 살펴보자.
아두헬름이 FDA의 가속 승인 프로그램을 통해 승인되자 2003년 이후 알츠하이머병의 새로운 치료제로 큰 관심이 집중됐다. Aboutlawsutis에 의하면, 미국 소비자 감시단체 '퍼블릭 시티즌(Public Citizen)'은 FDA가 아두헬름의 시판을 승인한 2021년 6월 7일 성명을 발표해 "FDA의 승인은 무모한 짓"이라고 날카롭게 비판했다.
퍼블릭 시티즌은 FDA가 ‘바이오젠과 부적절하게 협력’하여 안전성과 효과성이 입증되지 않은 치료약을 서둘러 출시했다고 주장했다. 2020년 11월 FDA 말초·중추신경계 약물 자문위원회에서 11명의 위원이 세 번의 투표 끝에 아두헬름은 효과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없거나(10명), 확실하지 않다(1명)는 의견을 제시했다.
퍼블릭 시티즌 대표 마이클 카롬(Michael Carome) 박사는 “FDA의 결정은 과학을 완전히 무시한 것이며, 신약 승인의 기준을 파괴했다”면서 “이 무모한 판단으로 인해 기관의 신뢰성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손상됐다”고 선언했다. 그는 FDA가 약물 승인 전부터 바이오젠과 긴밀하게 협력했으며, 이로 인해 검토 과정의 신뢰도와 성실성이 위험할 정도로 훼손됐다고 비판했다.
당시 약물 승인을 발표하면서 FDA도 그 결정에 대한 비판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으며, 데이터가 명료하지 않지만 통상적인 의사 결정 절차를 따랐다고 밝혔다.
FDA 약물 평가 및 연구센터 소장 파트리지아 카바조니(Patrizia Cavazzoni) 박사는 “아두헬름이 승인되어야 하는지에 관해 상당한 공개 토론이 있었고, 과학적 데이터를 해석할 때 종종 그렇듯이 전문가 커뮤니티는 서로 다른 관점을 제시했다”며 어처구니없는 보도자료를 냈다.
FDA는 가속 승인 프로그램을 통해 아두헬름을 서둘러 승인한 뒤 의료적으로 미흡한 점들을 충족시키도록 하겠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약물 승인 후 연구에서 아무런 이점도 나타나지 않으면 시장에서 철수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결국 FDA는 과학 자문위원회의 반대 권고를 무시하고 약물 사용을 승인했다. 이에 자문위원회의 두 위원은 항의의 표시로 사임하면서, “FDA의 이번 결정은 미국 역사상 최악의 약물 승인”이라고 책망했다.
이번 국정감사의 레켐비 허가에 대한 식약처장의 대응을 보면, 아두헬름 가속 승인 과정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기시감이 든다. 아두헬름의 결론은 2024년 1월 31일 판매 중단과 퇴출, 17년의 개발 여정 마감이다. 가속 승인한 FDA는 비난에 직면하면서 반년도 안 된 7월 6일 레켐비 승인으로 화제를 전환했다.
레켐비 관련 사망자 기록
레켐비 임상 3상에서 참가자 8명 중 1명 꼴로 ARIA-E로 알려진 부종이 발생했다.
공개 연장 시험에서 레켐비 관련 3건의 사망 사례가 보고되면서 이에 대한 조사가 진행됐다. 3건 모두 뇌 아밀로이드 혈관병증(CAA, Cerebral Amyloid Angiopathy)이 있었고 항응고제나 혈전 용해제를 사용한 사람들이었다. 관련 보고서에서 담당 의사는 혈관병증 환자에게 레켐비를 처방할 때는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레켐비의 첫 번째 사망자는 2022년 6월에 발생했고, 그해 10월에 건강 의학 매체 <STAT News>가 보도했다. 심방세동으로 항응고제인 아픽사반(상표명: 엘리퀴스)을 복용하던 87세 남성에게 ARIA(Amyloid-Related Imaging Abnormalities)가 발생했다. 의사들은 레켐비와 아픽사반을 모두 중단했으나, 그다음 달 그 남성은 심장마비를 겪었고 잠시 다른 항응고제를 복용하다가 4번의 뇌졸중과 뇌출혈이 발병해 결국 사망했다. 현장 조사자는 CAA, 아픽사반, 레켐비의 조합이 그의 뇌혈관을 약화시켜 출혈을 촉진했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에자이는 이 사망이 레켐비와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두 번째 사례로 APOE4 대립유전자를 두 개 보유한 65세 여성에게 레켐비를 세 번 투여했는데, 마지막 투약 후 4일 만에 그녀는 중대뇌동맥이 막혀 뇌경색을 겪었다. 시카고 노스웨스턴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그녀는 혈전 용해제인 t-PA를 투약받았다. 혈압이 급등하며 대량의 뇌출혈이 발생 했으며 심한 경련이 일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그녀는 사망했다. 이 사례는 2022년 11월 <Science>에 처음 보고됐고, 2023년 1월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을 통해 공식적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항아밀로이드 요법이 없더라도 t-PA가 CAA 환자에게 출혈을 일으킬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세 번째 사례는 플로리다에 사는 79세 여성으로 레켐비 2차 투여를 받자 두통과 혼란, 언어 장애가 나타났다. 그 직후 그녀는 발작을 겪었고, 잠시 항응고제인 헤파린을 투약받았다. 당시 MRI 검사에서 심각한 ARIA가 발견됐으며 그녀는 며칠 후 사망했다. 이 사례는 2022년 12월 21일 <Science>에 보고됐다. 자문한 외부 전문가들은 그녀의 사망이 레켐비로 인해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고, 에자이는 분석 중이라고만 밝혔다.
이처럼 잇따른 사망 사건에도 FDA의 대처는 아두헬름의 경우처럼 레켐비에 대한 적절한 사용 권장 사항을 개발하는 중이라는 발표뿐이었다. 2023년 7월 6일(현지 시각) FDA는 경도인지장애와 초기 알츠하이머치매 환자를 대상으로 레켐비를 승인했다.
FDA는 아두헬름과 레켐비의 연구 결과에서 드러난 치명적인 부작용에 비해 효능이 부족하다는 전문가 의견을 사소하게 여겼고, 식약처는 레켐비에 대한 국내 전문가 자문 회의를 거치지도 않고 허가했다.
FDA와 제약사 그리고 식약처
FDA 자문위원회는 의약품 규제 조치에 대한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소집되는 독립 패널이다. FDA의 결정은 자문위원회의 의약품 승인 권고 및 기타 사항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 권고 사항을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몇 년 동안 FDA는 의약품 승인 결정에 대해 과학 자문위원을 비롯한 비평가들의 반발을 겪어 왔다. 2021년 6월 7일, 11명의 자문위원회 전원이 아두헬름 승인에 반대했음에도 FDA가 이를 승인하자 2022년 12월 29일 미 하원 산하 에너지 및 상무 위원회(House Committee on Energy and Commerce)는 약 18개월간 조사한 보고서를 통해 FDA가 바이오젠(제약사)과 '일반적이지 않은 협력'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레켐비와 키선라(성분명: 도나네맙)의 임상시험에서 제약사가 피시험자에게 사망에 이를 만큼 심각한 위험성에 관해 알리지 않은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런 과정에서 신약의 철저한 과학적 검증보다 제약사의 요구를 우선 수용한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그 설립 취지에 크게 어긋난 모습을 보였다. 당연히 레켐비 승인 전에 중앙약심을 열어야 했을 뿐만 아니라 어떤 신약 승인보다 위중한 치매 치료제는 훨씬 더 엄밀한 심사를 거쳐야 했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식약처장의 대응은 아두헬름과 레켐비의 부작용과 효능 부족이라는 핵심 논점을 비껴갔다.
가족이 치매에 걸리면 구성원 중 한 명은 자기 삶을 포기하고 돌보는 현실이다. 보호자에게 정확한 치료 효과를 제공하고, 안전한 혁신 신약 제공 의지를 보여야 하는 곳이 식약처다. 레켐비 시판 후 조사로 위해성을 관리하겠다는 식약처장의 발언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고통을 겪는 국민은 함부로 잃어도 되는 소가 아니다.
Sources
What Drugmakers Did Not Tell Volunteers in Alzheimer’s Trials
https://www.nytimes.com/2024/10/23/health/alzheimers-drug-brain-bleeding.html
Consumer Group Calls FDA Approval of New Alzheimer’s Drug “Reckless”
https://www.aboutlawsuits.com/alzheimers-drug-approval-criticism-184640
Should People on Blood Thinners Forego Leqembi?
https://www.alzforum.org/news/research-news/should-people-blood-thinners-forego-leqembi
Second death linked to potential antibody treatment for Alzheimer’s disease
https://www.science.org/content/article/second-death-linked-potential-antibody-treatment-alzheimer-s-disease
Scientists tie third clinical trial death to experimental Alzheimer’s drug
https://www.science.org/content/article/scientists-tie-third-clinical-trial-death-experimental-alzheimer-s-drug
Study By Former FDA Advisors Finds Agency Is Biased Towards Approving New Drugs
https://www.aboutlawsuits.com/study-fda-biased-towards-approving-new-dru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