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를 선택할 때 주행 성능과 안전장치를 중시하듯 의약품 채택 시 우리의 판단기준은 약제 효능과 부작용이다. 특정 질환에 유효하면서 신체에 부작용 없이 안전한 약이라면 무방하겠으나, 효과와 부작용이 동반되는 약일 경우 선뜻 사용하기 어렵다. 물론 백방 무효할뿐더러 부작용 일색이면 그것은 이미 약이 아니다.
레켐비(Leqembi)는 올해 5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수입품목 허가를 승인한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다. 미국, 일본, 중국, 한국, 홍콩 순으로 잇따라 승인됐지만 최근 유럽연합(EU)에선 난관에 봉착했다. 지난 7월 유럽의약품청(EMA)은 레켐비의 허가를 보류하면서 그 이유를 ‘약효가 부작용보다 크지 않기 때문’이라고 발표했다. 아울러 EMA는 그 판정이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기구의 심사 평결에 따른 것임을 밝혔는데, 이는 ‘전반적으로 부작용의 위험성이 심각한 반면 알츠하이머병 진행 지연효과가 미미하기에 시판 승인요청을 거절해야 한다’는 약물사용 자문위원회(CHMP)의 권고를 의미한다. 또한 EMA는 당시 발표에서 ‘CHMP는 레켐비의 인지 저하 제어 효과가 부작용 위험을 상쇄하는 데 충분하지 못하다고 평가했으며, 더욱이 그 효과가 작기 때문에 부작용을 보다 신중히 고려해야만 했다’고 덧붙였다.
약효는 어떤가
약품 개발사(美Biogen과 日Eisai)가 제시한 효과지표는 임상치매척도총점(CDR-SB)의 변화다. 임상연구의 시작 시점(레켐비 투약군, 3.17; 위약 대조군, 3.22) 대비 18개월 후 종료 시점의 CDR-SB는 각각 4.38과 4.88인데, 그 증분(투약군 1.21, 대조군 1.66)의 차이(0.45)가 곧 약효(27%=0.45/1.66)라는 것이 개발사의 주장이다. 그러나 CHMP는 그 차이를 소소한(small) 것으로 간주했다. 왜 소소한지에 관해서 EMA 공식 문건에 명기된 바는 없지만, 의학 관계자들의 조언에 따르면 위 연구 결과를 개발사와는 다른 관점으로 재해석해 볼 여지가 있다.
알츠하이머병의 진행을 27% 늦췄다고 하면 언뜻 약효가 상당한 것처럼 들린다. 그런데 CDR-SB 총점이 18점임을 감안할 때 과연 0.45점은 실제 임상에서 체감될 수 있는 차이인지 의구심이 든다. 왜냐하면 실제 임상에서, 특히 알츠하이머병 초기 단계일 경우, Global CDR(총점 3점 체계)상 0.45점 차이로도 증상의 변화를 체감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경도인지장애와 초기 알츠하이머병에서 약제 효과는 시험 결과치의 통계적 유의성에 더하여 ‘실제 임상에서 의미를 갖는 최소한의 차이(threshold, 역치)’를 기준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 의료진과 환자의 입장에서 약효를 체감할 수 있는 평가 변수 상 최소변화량(MCID: Minimum Clinically Important Difference)이 바로 그것이다.
EMA의 레켐비 승인보류 발표 직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의료연구팀은 지난 8월 학술논문을 통해 ‘그 약효가 명백히 MCID 기준치에 미달한다’고 공개했다. 실제로 일선 의료인들과 연구자들은 초기 알츠하이머병 치료제의 효과평가에서 CDR-SB 채택 시 요구되는 MCID를 1점 이상(경도인지장애 1점, 초기 알츠하이머병 2점)으로 책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레켐비의 0.45점 효과는 비록 통계적으로는 유의할지라도 의료 현장에서 체감할 만한 수준의 약효로 용인되긴 어려울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 5월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의 기억 및 알츠하이머 치료센터장 에스더 오(Esther Oh) 박사는 레켐비 임상시험 결과에 대해 “MCID 기준을 충족치 못했다”면서 “의료인들은 향후 그 약제의 이점과 위험, 금기사항 등을 신중히 비교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한편, 작년 7월 레켐비를 승인한 美식품의약국(FDA)은 임상시험 결과의 해석상 MCID 적용 지침을 구비하거나 약효 심사 과정에서 그 어떤 MCID 기준도 적용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부작용은 무엇인가
CHMP가 제일 위험한 부작용으로 지목한 것은 ‘뇌혈관 변이(ARIA: Amyloid-Related Imaging Abnormalities)’다. ARIA란 알츠하이머병의 원인물질 아밀로이드(뇌에 축적된 단백질 응집체)를 겨냥한 항체 치료(약제에 의한 아밀로이드 제거 또는 생성억제) 과정에서 자기공명영상(MRI)에 포착된 뇌혈관 구조의 변화를 일컫는다. ARIA는 뇌부종이나 뇌출혈을 일으킬 수 있고, 심하면 환자가 사망에 이를 만큼 치명적인 부작용이다. 케임브리지대학 의료연구팀의 분석에 의하면 레켐비 투여군(898명)의 21.5%에서 ARIA 증세가 발현했는데, 그중 3명은 사망했다.
이와 더불어 CHMP는 약물 부작용과 ‘ApoE4 유전자’의 연관성을 조명했다. 인체 지방대사에 관여하는 ApoE 단백질은 유전형질에 따라 3종으로 나뉘며, 전 세계에 ApoE3(77%), ApoE4(15%), ApoE2(8%) 순으로 분포한다. 이 가운데 알츠하이머의 주요 병인으로 알려진 ApoE4 유전자의 경우 1개(이형접합체)만 보유해도 발병 소지가 최소 3배 증가하고, 2개(동형접합체)를 보유하면 그 가능성이 최대 12배에 달한다. 전체 인구의 20%가 APOE4(동형접합체) 유전자를 보유한 것으로 추산되는 한국인의 발병 가능성은 세계 평균치의 3배 이상일 것으로 의료계에서 추정하고 있다.
전체 알츠하이머 환자의 4할가량이 ApoE4 보유자다. 그들의 병증은 비보유자보다 현저히 빠르게 진행된다. 특히 65세 이상자가 ApoE4를 2개 보유할 경우 알츠하이머병 징후의 발현 비율이 95%를 초과할 정도다. 이에 CHMP는 ‘레켐비의 주된 투여 대상은 ApoE4 보유자들일 것’이라며, ‘알츠하이머병에 유독 취약한 그들에게서 ARIA 발생률이 가장 높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이렇듯 ApoE4 보유자에게서 ARIA 발생률이 가장 높았다면 막상 약효는 어땠을까? 하는 의문이 인다. 케임브리지대학 연구팀은 최근 항체 치료제들(아두헬름, 레켐비, 키선라)의 임상시험 결과를 종합분석해서 ‘ApoE4 보유자는 그 부작용이 두드러짐에도 오히려 효과가 저조함’을 보여줬다.
또한 서울대학교 치매융합연구센터 묵인희 교수(국가치매극복연구개발사업단장)는 지난 7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레켐비가 ApoE4 유전자가 없는 환자에게만 제한적으로 효과가 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에 앞서 묵 교수의 연구진은 국제학술지 게재 논문들의 연구 내용을 자체 분석해 ‘ApoE4가 2개인 경우 레켐비가 효과 없음’을 발견한 것으로 전해진다. 분석에는 ApoE4 외에 인종과 성별도 지표변수로 포함됐는데, 그 결과 아시아인(非백인)과 여성의 경우 또한 레켐비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토대로 묵 교수는 “레켐비가 백인이나 남성, ApoE4 유전자가 없는 환자에게만 제한적으로 효과가 날 것으로 예측된다”고 말했다.
만약 이들 분석과 예견이 정확하다면, 적어도 ApoE4 보유자에게 레켐비는 백해무익한 물질에 불과하다고 평가될 수 있겠다.
그러면 우리는
일찍이 그 선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고령화 추세가 가파른 한국에서 알츠하이머병은 장차 의료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전망되는 중대 질환이다. 그렇기에 어서 신약제를 적극 도입해야 한다는 견해와 그럴수록 더욱 안전하면서도 효과적인 약제를 엄선해야 한다는 신중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현재 유럽의 상황을 통해 알 수 있듯 그 약효와 부작용을 놓고 전 세계적으로 레켐비에 관한 논란이 아직 한창이다. 이런 가운데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는 올해 5월 24일 레켐비의 국내 시판(수입품목 허가)을 전격 승인했다. 그런 지 얼마 뒤에 식약처의 조처를 계기로 파장이 일었다. 사안의 핵심은 역시 약효와 안전성 검증에 관한 의혹이다.
레켐비 승인발표 직후 치매 전문 언론 <디멘시아뉴스>는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식약처에 중앙약사심의위원회(이하 약심위) 회의록을 요청했다. 이에 식약처는 품목허가 관련 ‘약심위 회의를 열지 않았고 회의록도 없다’고 회신했다. 약심위 개최는 법적 의무가 아니며, 레켐비 심사 과정에서 자료검토를 통해 약효·안전성이 충분히 검증됐다고 판단해 약심위 위원들의 의견 청취나 자문절차 없이 허가했다는 것이 식약처의 답변이었다. 그러더니 결국 국회 국정감사에서 식약처 행정처분의 절차적 타당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전진숙 의원은 이달 10일 국정감사에서 “레켐비의 허가 신청 과정이 졸속으로 진행된 것 아니냐”며 식약처를 질타했다. 이어서 그는 식약처장에게 “약품 검토 및 허가 과정, 전문가 자문을 생략한 사유, 미국·유럽 관계 당국의 약품 안전성 우려에 대한 식약처의 입장을 소명하라”고 주문했다.
식약처는 국민을 위해 식품·의약품 등의 안전 관리 체계를 구축·운영하는 관서로서 미국 FDA나 유럽 EMA에 해당한다. 그리고 약심위는 의약품에 관한 식약처 소속 법정기구로서 미국 FDA 말초·중추신경계 약물 자문위원회(PCNS)나 유럽 약물사용 자문위원회(CHMP)에 상응하는 조직이다. 설령 약심위 개최가 식약처의 법적 의무는 아닐지라도 미국과 일본에서 레켐비 승인 전 공식 자문기구를 통해 누차 허가 논의가 이뤄진 것은 우리와 대비된다. 나아가 CHMP의 권고를 수용해서 레켐비 유럽 진출에 제동을 건 EMA는 한국 식약처와 극명한 대조를 보인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약심위 개최 여부가 아니라 국민보건의 책임 당국으로서 식약처가 진정 약효검증과 안전 확보를 위해 얼마나 힘쓰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2022년 7월 12일, 식약처는 아두헬름 허가와 관련하여 약심위 회의를 소집했다. 그날 상정된 안건은 ‘임상시험 성적의 타당성’이었는데, 해당 약품의 위해성(부작용)에 관해서도 심의가 이뤄졌다. 회의 결과, 약심위는 ‘확증적 임상시험으로 평가하기에 충분치 않다’고 매듭짓고 식약처에 부정적인 의견을 제출했다. 그런데 아두헬름은 레켐비와 작용기전(항아밀로이드 약물 계열의 항체 치료제)이 같으며, 개발사(美Biogen과 日Eisai)마저 동일한 약제다. 게다가 현재 레켐비를 둘러싼 숱한 논란 또한 과거 아두헬름 당시에 못지않을 정도로 열띠게 전개되고 있다. 따라서 레켐비 승인에 이르기까지 단 한 차례의 약심위 회의조차 거치지 않은 것은 수긍하기 어려운 처사라 하겠다. 심지어 일각에선 식약처가 부정적인 의견이 두려운 나머지 약심위를 건너뛴 것은 아니겠느냐며 특혜 의혹까지 제기된다.
“EMA가 레켐비 허가를 보류한 이후에라도 개발사의 허가신청서를 재검토하거나 전문가 자문을 거친 적이 있느냐”는 전 의원의 지당한 추궁에 훗날 떳떳이 화답할 수 있으려면 식약처는 이제부터라도 본연의 책무에 더욱 충실해야 할 것이다. 약은 병을 고치기 위한 것이지만 궁극적으론 생명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약효와 부작용은 모순되거나 상충하는 관계가 아니다. 인체의 안전을 전제로 약효를 도모하는 것이 그 본분이기에 제약인은 언제나 치유력을 증진하되 행여 일면 해롭거나 생명이 위태롭지 않도록 한껏 힘써야만 한다. 늘 그렇게 이끌어주길 당부하며 식약처에 고한다. “국민 안심이 기준입니다(Your safety is our stand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