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에 대한 오해와 선입견이 사회적 낙인과 차별 일으켜”
응답자 27% 이상 “치매 환자, 요양원으로 옮기는 게 최선”
치매에 대한 인식 향상에도 오해와 선입견에 따른 사회적 낙인(stigma)과 차별(discrimination)이 여전히 널리 퍼져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국제단체인 알츠하이머병 인터내셔널(Alzheimer’s Disease International, ADI)은 영국 런던정경대(London School of Economics and Political Science, LSE)에 의뢰한 설문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세계 알츠하이머 보고서 2024: 치매에 대한 글로벌 태도 변화(World Alzheimer Report 2024: Global changes in attitudes to dementia)’를 지난달 20일 발표했다.
두 기관은 2019년에도 이 같은 내용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이번 설문 조사는 5년 뒤 치매에 대한 인식과 태도가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후속 연구로 이뤄졌다.
LSE는 2019년과 동일하게 네 그룹(▲치매 환자 ▲간병인 ▲보건 및 의료 전문가 ▲일반인)을 대상으로 세 가지 범주(▲지식 ▲태도 ▲행동)로 나눠 분석했다. 이번 조사에 참여한 응답자 수는 약 4만 명으로 2019년(약 6만 8,000명)보다 적었지만, 더 다양한 국가(166개국)와 지역, 소득 계층으로 고른 분포를 보였다.
보고서에 따르면, 치매에 대한 인식과 태도가 5년 전보다 일부 개선되기는 했지만, 치매 환자에 대한 심각한 낙인과 차별이 아직도 널리 존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보고서는 낙인에 대해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다르다고 인식돼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예를 들어 인종이나 종교, 신체적 능력, 정신 건강, 성적 지향 등 다양한 방식으로 다르게 인식되는 것처럼, 치매를 앓아 다른 사람으로 인식되는 것을 말한다.
차별은 치매 환자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과 편견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 발생한다. 치매 환자는 일반인, 가족, 의료 및 요양 전문가, 사법 시스템, 고용주 등으로부터 차별받을 수 있다.
이번 조사에서 일반인의 80%가 치매를 특정 질병에 따른 질환으로 보는 게 아니라, 정상적인 노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증세라고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19년(66%)보다 크게 높은 수치다.
특히 의사, 간호사 등 보건 및 의료 종사자 65%도 이같이 생각했는데, 5년 전 62%보다 3%포인트나 늘었다.
이 결과는 치매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진단과 치료, 지원에 대한 접근이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오해는 소득이 높은 국가보다 낮은 국가에서 더 흔하게 보였다.
또 응답자의 24% 이상이 치매를 예방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소득이 낮은 국가에서 크게 늘었다. 반면에 소득이 상대적으로 높은 국가에서는 치매가 건강에 해로운 생활 습관으로 발생한다는 생각을 가진 응답자 수가 더 많았다. 소득이 높은 국가일수록 좋은 생활 습관을 통해 치매를 예방할 수 있다는 믿음이 강한 것으로 풀이된다.
가족 지원이 부족해 치매가 발생한다는 의견에 동의하는 비율도 5년 전보다 높아졌다. 치매에 대한 책임을 사회 환경, 특히 가족에게 돌리는 경향이 짙어지는 것으로 해석된다. 보고서는 이와 관련해 “이러한 관점은 간병인과 가족을 향한 비난과 죄책감으로 이어져 가족 구성원이 수치심을 내면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더불어 응답자의 27% 이상이 치매에 걸린 가족을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요양원으로 옮기는 게 최선이라 생각한다고 답했다. 특히, 요양 산업이 발달하지 않은 중저소득 국가에서 이 같은 의견을 밝힌 응답자 수가 더 가파르게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차별 문제로는 14개 생활 영역 중 한 개 이상에서 경험한 개인의 비율이 88%에 달해 2019년 83%보다 5%포인트나 올랐다.
치매 환자 가운데 친구 관계에서 차별을 경험한 비율은 37.7%에서 53.8%로 나타났고, 데이트나 친밀한 관계 중 치료를 받다가 겪었다는 비율이 24.7%에서 53.7%로 급격히 높아졌다.
치매 환자의 36%는 고용 차별에 대한 우려로 구직이나 취업을 포기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간병인의 경우 응답자 중 43%는 치매 환자에 대한 타인의 태도를 우려해 친구나 가족을 초대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삶의 만족도 측면에서는 치매 환자(46%)와 간병인(43%)이 일반인(69%)과 의료진(68%)보다 현저하게 낮았다. 외로움의 수준도 치매 환자와 간병인이 일반인과 의료진보다 높게 나타났다.
한편, 보고서는 일본의 사례를 들어 ‘치매(痴呆)’라는 부정적인 용어를 바꾸면 사회적 낙인과 차별을 배제할 수 있다는 주장도 실었다.
일본에서 ‘바보’, ‘멍청이’를 의미하는 치매는 1909년 일본 의학 문헌에 처음 등장했다. 일본 정부는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치매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포용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2004년 인지증(認知症)으로 용어를 변경했다.
파올라 바르바리노(Paola Barbarino) ADI CEO는 이번 보고서를 통해 “젊은 세대의 참여를 통해 치매에 대한 낙인이 암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사라지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번 보고서는 치매 관련 낙인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 수립과 인식 개선 캠페인의 기초 자료로 활용될 전망이다.
출처 : https://www.alzint.org/resource/world-alzheimer-report-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