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기상청 날씨 예보 분석관 OOO입니다. 내일은 따뜻한 공기가 찬 서해상으로 유입되면서 서해안을 중심으로 짙은 안개가 끼는 곳이 있겠으니, 교통안전 및 해상 안전사고에 유의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날씨 예보를 듣고 크게 신경 쓰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하물며 기상청 기상특보 발표 기준에 강풍, 풍랑, 호우, 대설, 건조, 폭풍해일, 한파, 태풍, 황사, 폭염 등의 내용은 있어도 안개는 해당 없다.
그렇다고 안개의 위험성을 무시할 수 없다. 2015년 2월 11일 인천 영종대교에서 짙은 안개로 차량 106여 대가 추돌한 사고가 발생했다. 공식 집계된 당시 사상자 수는 사망 2명, 부상 130명이다. 마치 전쟁 같은 상황이 영종대교 위에서 벌어진 것이다. 짙은 안개에 많은 사람이 속수무책으로 무기력하게 교통사고 현장으로 빨려 들어갔다. 짙은 안개에는 교통안전에 유의해야 한다. 안개 짙은 날 운전하면 상황 판단이 쉽지 않아 길을 잃어버릴 것 같아 조마조마하다. 머릿속에도 마음을 어수선하게 하고 생각을 방해하는 안개가 있다. 머릿속 짙은 안개에는 두뇌 건강에 유의해야 한다.
서울시는 해마다 ‘한강 멍때리기 대회’라는 이색적인 이벤트를 열고 있다. 올해도 5월 12일 반포한강공원에서 열렸다. 무념무상,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1등이 되는 재미있는 이벤트다. 대회 참가자는 90분 동안 어떤 행동도,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멍한 상태를 유지한다. 이런 이벤트의 성공 개최에서 바쁜 삶에 지친 사람들이 얼마나 마음의 여유를 갈망하는지 엿볼 수 있다.
각자 하루를 되짚어 보라. 대부분 눈을 뜨면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며 보낸다. 특별히 할 일이 없으면 스마트폰을 손가락으로 쓸어올리며 시간을 보낸다. 현대인은 하루에 너무 많은 일을 하며 살아간다. 주변 환경의 변화를 예측하기 어렵고 미래도 불확실한 시대를 살고 있다. 그래서 현대인은 스트레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특히 본인이나 가족의 질병, 죽음, 이혼, 결별, 실직 등 인생의 큰 사건을 만나면 스트레스가 감당하기 힘든 상태에 도달한다. 이때는 마치 안개 속을 걷듯이 생각의 방향을 못 잡고 정신이 멍해지고 무기력해진다. 이렇게 머릿속이 멍해지는 상태를 ‘브레인포그’(Brain Fog)라고 한다.
브레인포그의 원인, 만성 스트레스
스트레스 자극에 대한 투쟁-도피 반응(Fight or Flight Response)은 원시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생존 메커니즘이다. 길에서 맹수를 만난 인류 조상은 발 빠르게 도망가든지 아니면 처절하게 싸우든지 해야 했다. 도망을 가든 싸우든 뇌는 다음 행동을 위해 몸을 최적 상태로 신속히 만든다. 이를 위해 뇌는 코르티솔, 아드레날린 등 스트레스 관련 호르몬과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해 몸의 상태를 조절한다.
사람의 뇌는 스트레스 요인을 감지하면 감정처리를 담당하는 편도체가 시상하부에 즉각 신호를 보낸다. 시상하부는 스트레스 요인에 대처하도록 교감신경계를 작동시키고, 그 결과 몸이 반응하기 시작한다. 호흡은 빨라지고 심장박동, 맥박, 혈압이 오르고 소화는 느려진다. 뇌는 오직 스트레스 요인에 대처하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동원한다. 스트레스 요인이 사라지면 부교감신경이 작동해서 다시 평소 상태로 돌아온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일시적으로 크고 작은 스트레스가 수시로 생겼다 사라진다. 스트레스 해소를 잘하는 사람에게 이러한 단기 스트레스는 뇌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질병, 실직, 지인의 죽음, 이혼과 같이 인생의 주요 사건과 위기, 육아 스트레스, 직장 내 스트레스 등 장기적으로 힘든 상태에서 생겨나는 만성 스트레스는 뇌 건강에 안 좋다. 만성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사람은 코르티솔, 아드레날린 등의 스트레스 호르몬과 신경전달물질이 계속 분비되는 사람이다. 스트레스 호르몬은 해마 등 학습과 기억을 관장하는 뇌 영역에 영향을 주어 집중력, 주의력, 학습을 위한 기억력을 감퇴시킨다. 만성적으로 높은 코르티솔 수치는 우울감, 기억력 및 집중력 감퇴, 불면증, 멍한 상태와 관련 있다. 그래서 만성 스트레스는 브레인포그의 주요 원인이다.
안개 속에서 헤매는 듯한 몽롱한 상태에 시달리다 보면 집중하기도 어렵고, 기억력도 떨어지며, 마음은 무겁고 어수선해진다. 생각은 방향을 잃어 명확한 판단을 내리는 데 자신감이 없고 무기력해진다. 더 나아가 삶의 보람이나 의미를 느끼기 어려워진다. 브레인포그는 뇌 건강 위협을 넘어 대인관계를 꼬이게 하고 인생의 탄탄대로에 굴곡을 만든다.
브레인포그는 의학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주변 환경 문제에 원인을 두고 있다. 소소한 스트레스 없이 사회 일원으로 살아가기 힘들다. 자기와 생각이 다르고 생활방식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다 보면 크고 작은 충돌은 늘 생기기 마련이다. 국이 보글보글 끓다가 어느 시점이 지나면 미처 손쓸 새도 없이 갑자기 확 끓어 넘쳐 낭패를 본다. 마찬가지로 소소한 스트레스가 누적되면 만성 스트레스로 쌓여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 건강이 상한다. “스트레스 쌓인다”며 자주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사람은 이미 스스로 자신이 한계 지점에 이르렀다는 것을 인지한 것이다. 이미 브레인포그가 진행되는 것을 감지하고 뭔가 이 상황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럼, 머릿속 안개를 걷어낼 방법은 없는가? 환경적인 요인 문제로 브레인포그를 접근해 보면 브레인포그를 사라지게 하는 방법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다음 칼럼에서는 브레인포그를 걷어내는 방법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양은미
(주)마음생각연구소 대표이사
세계사이버대학교 겸임교수
(사)건강소비자연대 건강부총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