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현판 걸고 기념사진 찍으면 치매안심마을 될까?
[기자의 눈] 현판 걸고 기념사진 찍으면 치매안심마을 될까?
  • 황교진 기자
  • 승인 2024.07.18 14: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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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인을 지지하는 인식개선 교육과 함께 지역 내 콘텐츠부터 만들어야...
일본 이타바시구, 스코틀랜드 머더웰처럼 “주변의 이해와 생활 편의부터”

 

도쿄도 이타바시구 치매협의회 / TOKYO MX 유튜브 캡처

일본 도쿄도의 이타바시구는 고령자 5명 중 1명이 치매를 앓는 마을이다. 17일 이타바시구는 “치매에 걸려도 희망을 갖고 계속 살 수 있는 사회”를 위한 목적으로 한 치매협의회가 열렸다. 참석자들은 “주변 사람들이 치매를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타바시구가 개최한 치매협의회는 도쿄도 내에서 유일하게 민관이 협력해 치매 대책을 논의한 회의로, 구내 공공시설 직원과 지역 민간 기업 담당자들 외에 치매 당사자도 참석했다.

도쿄도 건강장수의료센터 오카무라 다케시 의사는 “이제 치매는 오래 살면 누구나 걸리는 당연한 병이다. 치매가 있든 없든 행복하게 살게 하는 것이 의학교육의 상식이 돼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치매 당사자는 “아주 간단한 작업이라고 생각해 온 것이 불가능한 작업이 되는 것이 눈에 띄게 많다. 하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다. 회사를 그만두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경제 활동이 어려워진다”, “치매 환자는 병자로 보이지 않는다. 진단서를 가방에 넣고 다니는데 ‘병을 핑계 삼고 있다’는 말을 듣는다. 환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등의 이야기를 나눴다.

치매 당사자들이 겪는 삶의 어려움을 들은 참석자들은 먼저 많은 사람이 치매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하고 지역사회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돕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치매협의회에 참석한 민간 기업의 이사는 “특히 초로기치매 환자가 주변에 있다는 것에 대한 사회적 이해가 적다. 치매를 공부하는 기회가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고, 공공시설 직원은 “우리가 (치매를) 감지해서 말을 걸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 먼저 도움을 요청해 주면 그 계기로 여러 필요한 일을 해드릴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치매 상식이 담긴 ‘어린이용 팸플릿’ / TOKYO MX 유튜브 캡처

지역 내 치매 지원책 확산 필요

이타바시구에서는 “치매에 걸려도 자신의 권리와 의사가 존중받고 능력을 발휘하며 희망을 갖고 살 수 있는 사회”를 ‘치매 친화적 사회’라고 정의한다. 그 실현을 위해 치매협의회를 비롯해 치매에 관한 올바른 이해를 돕기 위한 강연회, 건망증에 대한 무료 상담회 등을 열고 있다. 또한 지역 내 치매 지원 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길을 잃어 곤란한 치매인에게 말을 거는 훈련을 하고 있으며, 치매 환자 모임 장소로 카페 등록을 추진해 구내에 34개소를 등록했다.

도쿄도 다마시에서는 “치매를 곧 자신에게 다가올 일로 여기는 고령자뿐만 아니라,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치매에 관한 지식을 습득하고, 가까운 사람이 치매에 걸렸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배우게 하는” 다양한 시도를 진행하고 노력한다. 시청이나 시내 공공시설에 치매 상식이 담긴 ‘어린이용 팸플릿’을 배포하며, 만화와 삽화를 이용해 ‘가까운 사람이 치매에 걸렸을 때의 구체적 사례’와 ‘치매 환자와 관계 맺는 데 필요한 지식’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그 외에도 지역 행사 등에서 치매를 주제로 한 그림책과 워크시트를 활용한 어린이를 위한 미니 강좌도 개최한다.

이처럼 일본의 지역사회에서는 어린이를 포함한 다양한 세대와 지역 전체가 치매 환자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서로를 지지하는 체제를 구축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스코틀랜드 머더웰 상점의 '치매 친화 커뮤니티' 로고, 이 로고가 있는 상점들은 치매인을 위한 유용한 서비스가 구비돼 있다. / Scotland's first dementia friendly community
스코틀랜드 머더웰 상점의 '치매 친화 커뮤니티' 로고, 이 로고가 있는 상점들은 치매인을 위한 유용한 서비스가 구비돼 있다. / Scotland's first dementia friendly community

치매 친화 지역으로 선포하기 전 준비 과정 필요

디멘시아뉴스 기획 <한국에 없는 마을> 시리즈 7편으로 다룬 스코틀랜드 ‘머더웰’은 2012년 도심 전체를 치매 친화 지역으로 선언하기 전에 도시 행정 직원들을 대상으로 치매 인식개선 교육을 시행한 것을 비롯해 명확하고 간결한 표지판, 탐색 편의성, 적절한 조명, 좌석 구역 및 바닥 유형 개선 등 치매인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도시로 전면 개편해 준비부터 완료한 뒤 공표했다.

우리처럼 치매안심마을 혹은 치매보듬마을로 선포해 놓고 별반 내용이 없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스코틀랜드는 2010년 6월에 발표한 국가치매전략에 따라 8가지 주요 조치가 담긴 치매 전략을 세워 전체 시스템을 짜놓고 치매 환자를 지원하고 돌보는 전문 기관부터 파트너로 정했다. 250개 이상의 상점과 기업 및 단체 가운데 치매인들이 중요하다고 말한 대표적인 20여 개를 치매 친화 장소로 선정했고, 치매 환자가 편하게 드나들며 쇼핑하고 편의시설을 이용하게끔 준비를 마쳤다. 보건소와 소방서도 치매 교육을 받고 상황 발생에 전문적으로 대처하도록 했다.

일본 오무타시는 네덜란드 호그벡 마을처럼 건축 기획형 치매 마을이 아니다. 탄광 마을로 인구 20만 명이 넘는 경제 요충지가 폐광되면서 인구 4만 명에 고령화율이 35.7%가 된 노쇠한 도시의 콘텐츠를 치매 친화 모습으로 만들면서 치매 마을로 탈바꿈했다. 오무타시는 2002년부터 치매에 관심을 두기 시작해 지역민 전체가 치매를 이해하고, 치매 환자가 되어도 누구나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는 마을 만들기에 착수했다. 시 전체 세대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했고, 시민들로부터 1,500여 개의 의견을 받아 초등학교부터 치매 인식 교육 시행, 치매 케어 전문가 육성, 치매 모의 훈련을 시행하며 삶의 마지막 시기의 존엄성 유지에 신경 썼다.

 

전원 속 소규모 공동생활가정인 용인해바라기요양원 / 이석호 기자
전원 속 소규모 공동생활가정인 용인해바라기요양원 / 이석호 기자

우리의 치매 친화 환경 조성은 어떤가?

치매안심센터 관계자와 이 주제로 대화해 보면 “마을회관에 ‘치매안심마을’ 현판 달고 사진 찍고, 흙 몇 삽 뜨면 치매 친화적 지역사회가 되는 줄 안다”, “왜 해외 사례에서 배우지 못하는가?” 하는 탄식이 오간다. 학회에 취재를 가봐도 효과가 미미하고 부작용 논란도 끊이지 않은 데다 값비싼 치매 신약 도입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치매 친화형 지역사회에 대한 논의와 주제 발표는 접하기가 어렵다.                   

그러던 중 용인해바라기요양원을 만났다. 배정은 원장은 인간 중심 케어에 대한 공부를 했지만, 치매 어른을 돌보는 데 필요한 전문적인 환경 공부를 따로 한 것은 아니다. 작은 규모로 어르신 아홉 명을 모시기 위한 최적의 시스템과 콘텐츠를 스스로 연구해서 구현한 곳이 용인해바라기요양원이다. 그러다 보니 보호자인 자녀들도 돌보기 힘든 치매 어르신들에게 꼭 필요한 '집처럼 편안한 공동생활가정'을 이루었다. 배 원장은 치매 어르신이 웃고 먹고 마시고 놀이를 즐기도록 곁에서 섬기며 기뻐하고 행복해한다.

대한민국에 제대로 된 치매 마을이 생기려면 위와 같은 사례를 집중해 탐구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배 원장처럼 치매 당사자에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헤아리는 예민한 감수성과 희생정신이 먼저다. 그 감수성이 네덜란드의 호그벡 마을, 일본의 치매 친화형 도시와 시설의 특징을 자연스럽게 구현해 낼 것이다. 용인해바라기요양원은 낭중지추처럼 알려졌다. 아홉 명 정원이라 더 받을 수도 없고 더 받는 규모가 되면 정체성이 흔들리는 곳이어서 그럴 계획도 없다. 각 지역에 특히 치매안심센터 찾기 힘든 지방 곳곳에 힘들게 사는 치매 노인들을 위한 용인해바라기요양원이 세워져야 한다. 그런 치매 친화형 시설을 중심으로 마을 전체의 치매 인식이 개선돼 치매 어르신 외출에 불편함이 없는 그곳이 치매 마을일 것이다.

이름 선포하고 현판식 앞에서 찍은 기념사진을 담은 보도자료를 언론사에 뿌리기 전에 치매 친화 콘텐츠와 집 밖에서의 일상 활동 지원 체계부터 치밀하게 만들어야 한다. 치매는 상식인 시대에 이미 들어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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