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용태 칼럼]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떠나라!
[곽용태 칼럼]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떠나라!
  • 곽용태 신경과 전문의
  • 승인 2024.07.02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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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대란 사태 4개월 넘겨...정부 등 해결책 제시도 보이지 않아
헌법적 가치 무력해져...전공의·의대생 자발적 선택 인정해야

지난 75년 월남의 패망과 함께 시작된 베트남 난민의 대탈출은 80년대 후반까지 10년 이상 계속됐다. 유엔고등판무관실 등이 파악한 난민의 수는 4백만∼5백만명. 이중 1백50만명이 조그만 목선 등에 생명을 맡기고 정처 없이 망망대해로 나선 보트피플이다. 이들은 새로 들어선 정부의 학살을 피해 어선이나 소형 돛단배 심지어 고무보트까지 이용, 자유를 찾아 탈출을 감행했다. 베트남 당국의 추적을 피해 무조건 넓은 바다로 떠난 난민들은 폭풍우를 만나거나 워낙 작은 배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승선한 탓에 배가 침몰, 몰사하는 등 자유를 찾으려던 여정을 비극으로 끝맺기도 했다.

- 1997년 동아일보 기사에서(2009년 업데이트) -

 

다른 의료분야도 마찬가지만 저와 같이 주로 완치가 쉽지 않은 치매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는 완전 해결이 아닌 차선책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때는 대개 혼자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환자나 보호자와 협의해서 결정합니다.

예를 들어 치매로 인해 매우 폭력적이거나 낙상의 위험성이 있는 경우에 일정 부분 강박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여기서 강박은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첫 번째는 극단적으로 사지를 묵는 것과 같은 물리적 강박이 있고, 두 번째로는 항정신병약물, 수면제와 같이 약을 통해 환자를 인위적으로 가라앉히거나 재우는 것이지요. 안정될 때까지만 일시적으로 적절하게 사용된다면 큰 문제는 없습니다. 다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이처럼 센 방식으로 치료해야 하고, 이 때문에 환자가 심각한 부작용에 장기간 노출되면 문제가 생깁니다.

이 경우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는 이 환자가 위험한 행동을 하지 않도록 잘 달래고 제어할 수 있는 개인 간병을 1인실에서 하는 것입니다. 개인 병실에서 치료해야만 하는 것은 사실 환자 본인의 문제도 크지만, 실제 더 큰 문제는 다인실에 있으면 옆에 환자들에게 피해를 많이 주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자칫하면 유사한 주변 환자들도 행동 증상이 나빠질 수 있지요. 이렇게 1인실과 개인 간병을 하면 의사도 강박과 같은 억압적인 방법을 줄이고 좀 더 유연한 방식으로 호흡을 길게 해서 환자에 대한 치료계획을 끌고 갈 수 있습니다. 문제는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든다는 것입니다. 쉽게 비유하면 여러분이 비행기 이코노미석에서 일등석으로 가는 차액 정도가 든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저는 아주 당혹스럽지만 보호자에게 말합니다.

나: 환자분이 너무 소리치시고 폭력적이어서 옆에 환자들도 힘들어 하고 환자도 약물 부작용 가능성이 높아서 당분간이라도 1인실에 가서 치료받으셔야 합니다.

보호자: 선생님, 만약 그렇게 하면 얼마나 더 비용이 드나요?

나: (얼마) 비용이 듭니다.

보호자: 그렇게나요… (당혹한 표정을 지으며 혼잣말로) 감당이 안 되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겠네….

 

흔히 경험하는 사례입니다. 제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지요. 이런 상황을 많이 접하다 보니 저도 나름대로 이 상황까지 가지 않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래서 이런 환자가 입원하게 되면 처음부터 이 같은 상황을 가상하고 계획을 세우려고 합니다. 제가 보호자에게 강조하는 것은 ‘좋은 치료도 중요하지만, 이 치료가 지속 가능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력 즉 ‘돈’ 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직접 보호자에게 하는 편입니다. 경제적인 여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 확인하고 그 안에서 어떤 계획을 세울지 미리 살펴보고 만약 그게 어려우면 다른 ‘절’을 찾는 것도 중요한 치료계획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절차가 선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위와 같은 상황이 생긴다면 어떻게 될까요?

나: 환자분이 너무 소리치시고 폭력적이어서 옆에 환자들도 힘들어하고 환자도 약물 부작용 가능성이 높아서 당분간이라도 1인실에 가서 치료받으셔야 합니다.

보호자: 선생님, 만약 그렇게 되면 얼마나 더 비용이 드나요?

나: (얼마) 비용이 듭니다.

보호자: 그렇게나요… (당혹한 표정을 지으며 혼잣말로) 감당이 안 되는데…

나: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요!

 

비슷한 대화처럼 보이지만 아주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절’은 사회, 규칙이나 권력을 의미합니다. ‘중’은 개인, 부적응이나 피권력자를 의미합니다. 굳이 대입하면 절은 의사이고, 중은 환자일 수가 있습니다. 문제는 이 말을 누가 하는지에 따라 아주 다른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지요. 위의 예처럼 환자나 보호자가 이야기한다면 이 말은 기본적으로 자조적이지만 현실 인식, 통찰로도 승화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의사가 이 말을 한다면 그 의미는 어떤 문제의 해결보다는 문제를 제기한 측을 논의에서 배제하는 행동이 돼 교묘하게 논점을 흐릴 뿐 아니라 어떻게 보면 폭력적일 수도 있습니다. ‘나는 항상 옳고 내가 좋은 해결책을 주었는데 못 알아들으면 니가 문제이다.’, ‘나는 할 일 다 했다.’라는 강력한 폭력성을 보입니다. 실제로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다 보면 알게 모르게 이런 자세를 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말에는 최소한의 숨쉴 수 있는 구석이 있습니다. 절이 싫은 중이 떠나는 것에 대해서 아주 ‘쿨’합니다. 냉소적으로. 중만 스스로 받아들이면 모두 ‘오케이’인 것이지요. 물론 절을 떠난 중이 술 먹을 때는 씩씩거리고 절을 욕하겠지만 말입니다.

 

곽용태 제공

윤석열 정권에서 의료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의대 증원 2,000명이 촉발한 전공의 사직, 의대생 수업 거부 등 의료대란 사태가 4개월을 넘겼습니다. 아마도 제 생각에는 정부를 포함한 누구도 특별한 해결책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저처럼 완치가 쉽지 않은 환자를 치료할 때 의사가 항상 명심해야 하는 것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일입니다. 할 수 없는 것에 신경을 쓰다 보면 결국 중요한 것을 놓치고, 결과적으로는 환자에게 심각한 피해를 줍니다. 그래서 항상 현실을 받아들이고 플랜B를 생각하면서 환자를 봐야 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지금 벌어지는 의료대란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현재로서는 ‘할 수 없는 것’인 듯합니다. 그러면 플랜B가 필요하지요.

플랜B는 현재 상황을 일단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것’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러면 해야 할 일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가게 하는 것입니다. 즉 전공의나 의대생들의 자발적 선택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현재 벌어지는 심각한 문제는 절이 싫은 중을 떠나지 못하게 문을 걸어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절은 더 시끄러워지고 속으로 썩어갈 뿐입니다. 정부는 온갖 좋은 말과 명분을 들이 내밀지만 저는 그냥 폭력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정부와 많은 언론이 문을 걸어 놓은 채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라고 절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게 심각한 문제입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14조 ‘모든 국민은 거주·이전의 자유를 가진다.’, 대한민국 15조 ‘모든 국민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가진다.’라는 헌법적 가치는 절의 주지들이 말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라는 2,400년 전 고문서 앞에서 무력한 것 같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나라는 헌법보다도 위에 있는 무엇인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1953년 7월 23일, 한국전쟁이 끝나고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갈렸습니다. 1975년 4월 30일 베트남은 하나로 통일됐습니다. 종전이나 통일 당시 누가 보아도 북한의 발전 가능성이 남한보다 컸고, 통일 베트남은 강국으로 부상할 것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한반도에서는 북한은 누가 보아도 실패한 국가가 되었고 베트남은 아직도 저개발국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그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일까요? 물론 어떤 나라의 발전을 한 가지 이유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단 한 가지만 이야기하라고 하면, 저는 중이 절을 떠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완고하고 폭력적인 체제를 견디지 못하는 베트남에서는 4~500만 명이 모국을 떠났고, 한국전쟁에서는 680만 명 정도의 북한 사람이 남한으로 왔다고 합니다. 문제는 떠나는 중이 젊고 유능한 인재라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 사회 발전의 기본은 인재입니다. 거침없이 상대방에게 ‘절이 실으면 중이 떠나라’는 말은 ‘그러면 소는 누가 키우나?’라는 말에 해답을 줄 수 있을 때만 가능한 이야기 아닐까요?

 

 

 

곽용태
신경과 전문의, 현 용인효자병원 진료부장, 연세대학교 신경과 외래교수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동대학 석·박사 취득
2000년 세계적인 인명사전인 Marquis Who's Who 등재
2006년 대통령직속 산업의학 발달위원회 전문위원
저서 《치매 부모님이 드시는 약 이야기》, 《담장 너머 치매》, 《우리 부모님의 이상한 행동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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