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성 칼럼] 고대의 히포크라테스 시절부터 현재의 사이코바이오틱스까지
[김용성 칼럼] 고대의 히포크라테스 시절부터 현재의 사이코바이오틱스까지
  • 김용성 교수
  • 승인 2024.06.21 11: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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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증상을 조절하는 주인공, 장내미생물
1900~1930년, 대장의 측면에서는 광기의 시대

사이코바이오틱스(Psychobiotics)는 필자를 비롯한 일부 연구자들이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한 개념이다. 개인적으로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는 프로바이오틱스(Probiotics)인 사이코바이오틱스라는 개념을 처음 알았을 때 흥미롭기도 했지만 동시에 어떻게 연구자들은 장내미생물이 뇌 건강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했을까 하는 점이 궁금했다. 최근 20~30년간 이루어진 수많은 장내미생물 연구가 뇌-장-미생물 축과 사이코바이오틱스의 이론적 배경이 됐지만, 장과 정신건강, 더 구체적으로는 장내미생물과 정신건강의 관계는 아주 오랜 역사가 있다.

 

히포크라테스 / Wikipedia
히포크라테스 / Wikipedia

지금처럼 장내미생물의 역할에 대한 지식이 없던 고대부터 20세기 초까지 장내미생물 자체가 정신 증상의 원인이 될 수 있고, 장을 치료함으로써 정신 증상을 개선하는 다양한 치료법이 시도됐다. 미생물 감염은 실제 정신질환의 원인으로 밝혀졌는데 그 대표적 예로 매독 원인균인 트레포네마 팔리둠(Treponema pallidum)을 들 수 있다.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 중 상당수는 바로 신경매독으로 정신 증상을 일으킨 환자였다. 이런 신경매독의 개념과는 조금 다르게 근대 의학자들이 대장 자체를 정신 증상의 주범으로 지목한 것은 히포크라테스 시절부터 복부 내장 기관이 광기와 우울증의 주요 발병지로 여겼기 때문이다. 의학이 관념이나 철학과 구분이 되지 않던 고대에 제시된 이 개념은 잊힐만하면 다시 의학자들 사이에서 되살아나 다양한 치료법 시도의 배경으로 작용했다. 물론 여전히 비과학적인 개념의 시도였지만 말이다.

1900년에서 1930년 사이에 이런 개념이 광적으로 유행했다. 이 시기에 대장은 다양한 질병의 원인으로 여겨졌다. 특히 정신적 질병도 대장이 증상의 원인 장기로 여겨졌는데 1900년대 초 일부 저명 의사와 과학자들은 대장 안의 내용물, 특히 바람직하지 않은 미생물들이 피로, 멜랑콜리아(지금의 우울증 증상) 및 신경증 발생에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장에서 유래한 독소가 전신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을 설명하는 데 자가중독(Autointoxication), 장 정체, 장내 독소증이라는 용어가 소개됐다. 1908년 노벨 생리학·의학상 수상자인 러시아의 동물학자 엘리 메치니코프(Élie Metchnikoff)도 노화의 원인이 장내에서 일어나는 부패라고 생각했고, 이를 억제하는 유산균을 복용하면 노화, 피로, 우울증 같은 다양한 자가중독 증상 개선에 유익하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이렇게 유산균이나 음식을 통해 장내미생물을 조절하는 치료 방식은 상업적으로 다양한 유제품 기반의 유산균 음료 개발에 시발점이 됐고, 현재의 거대한 프로바이오틱스 산업으로 발전했다.

1910년 록펠러 의학연구소의 C. A. Herter와 A. I. Kendall은 원숭이 실험을 통해 식이가 변화되면 장내미생물이 달라지고 동시에 무기력감이나 인지장애 같은 행동 변화가 나타나는 것을 보고했다. 또한 같은 해에 신경질환 병원 의사인 John George Porter Phillips는 멜랑콜리아 환자를 생유산균이 포함된 젤라틴으로 치료하며 환자의 우울 증상이 감소하는 것을 관찰했다. 아마도 이 치료 시도가 최초의 사이코바이오틱스가 아닐까 싶다.

 

William Arbuthnot Lane과 Henry Cotton / Wikipedia
William Arbuthnot Lane과 Henry Cotton / Wikipedia

문제는 이 기간에 자가중독, 장독소 등에 대한 치료법의 열풍이 불었지만, 과학적 근거가 부족했고 극단적이었다는 점이다. 영국의 유명한 외과의사 William Arbuthnot Lane는 만성변비와 대변의 축적으로 인한 독소 발생이 만성피로, 관절염, 심지어 정신질환까지 유발한다는 자가중독 이론에 따라 멀쩡한 대장을 잘라냈다. 뉴저지 주립병원 정신과 의사 Henry Cotton은 다양한 정신질환이 치료되지 않은 신체 감염으로 인해 발생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치아의 세균 감염이 원인이라고 확신해 환자의 치아를 뽑기도 했고, 치아를 뽑아도 효과가 없자 그는 편도선, 부비동, 그리고 내장 기관(비장, 대장, 위, 생식기 등)까지 제거하는 극단적인 수술을 시행했다.

이러한 수술로 환자 사망률은 30~45%에 달해 많은 환자가 목숨을 잃었다. 지금의 시선에서는 믿을 수 없는 극단적 치료가 의사들에 의해 시행됐다. 독소를 제거하기 위한 대장 관장 같은 터무니없는 치료가 등장하면서 의료계는 논란과 반발이 일어나 결국 가짜 과학로 치부됐다. 동시에 항생제의 발달로 병원균을 죽이는 치료법이 의사들의 관심을 받았다.

1950~1960년대의 모노아민 우울증 이론이 정신질환 분야의 약물 개발을 주도하면서 의학계는 장내미생물과 정신 증상의 관계에 대한 연구가 사라졌다. 그러나 만성변비에 의한 독소 침투 같은 비의학적 주장이 환자들에게 두려움을 조장하면서 민간요법이나 유사 의료계에서 명맥을 이어왔는데, 21세기 한국에서도 커피 관장으로 대장이 손상된 증례가 보고되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치매의 병인으로 내독소(리포 다당류 Lipopolysaccharide, LPS) 이론이 제시되고 있고 치주염균인 Porphyromonas gingivalis가 원인균으로 지목되고 있으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무균 쥐는 정상 쥐보다 스트레스 호르몬 반응이 더 크게 나타난다. 생후 9주째 한 종류의 세균을 이식해 보면, 유익균을 이식한 경우만 스트레스 호르몬 반응이 정상화되고 병원균을 이식하면 악화된다. / 무균 쥐에서 장내세균과 HPA 축 스트레스 반응에 대한 연구(Nobuyuki Sudo 외. J Physiol 2004년)
무균 쥐는 정상 쥐보다 스트레스 호르몬 반응이 더 크게 나타난다. 생후 9주째 한 종류의 세균을 이식해 보면, 유익균을 이식한 경우만 스트레스 호르몬 반응이 정상화되고 병원균을 이식하면 악화된다. / 무균 쥐에서 장내세균과 HPA 축 스트레스 반응에 대한 연구(Nobuyuki Sudo 외. J Physiol 2004년)

수십 년이 지난 2000년대에 장내미생물 연구가 새로운 분야로 주목받으며 관련 연구가 쏟아지면서 사이코바이오틱스의 개발은 과거에 비해 논리적이고 단계적인 발전 과정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다. 그 시발점은 장내미생물이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 축(HPA 축), 즉 코티솔 생산으로 이어지는 신체의 주요 스트레스 반응 시스템의 발달과 기능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증명한 일본 규슈 대학의 노부유키 수도(Nobuyuki Sudo) 교수의 2004년 연구다(그림).

이 일본 연구팀은 무균 쥐는 정상 쥐에 비해 과도한 스트레스 반응과 더 많은 코티솔을 분비한다는 것을 관찰했다. 놀랍게도 건강한 정상 쥐의 대변을 무균 쥐에 이식하면 비정상 반응이 부분적으로 정상으로 변했다. 특히 Bifidobacterium 같은 유익균을 투여하면 효과가 컸다. 정상 쥐 분변 이식은 생애 초기 단계에 적용한 경우에만 비정상 반응을 되돌릴 수 있었다.

이 연구는 장내미생물이 스트레스 반응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획기적인 발견이며, Bifidobacterium 같은 프로바이오틱 균주가 항우울 효과에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제시한 결과다. 왜냐하면 우울증은 비정상적인 HPA 축 기능이 특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 우울증의 병리기전으로 인터루킨-1, 인터루킨-6 및 종양 괴사 인자 알파(TNF-α)와 같은 전염증성 사이토카인이 증가한 저등급 염증 상태가 제시되면서, 장내미생물의 면역조절 효과가 우울 개선에 효과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또한 장내미생물이 신경전달물질을 직접 생산하거나 그 전구체 합성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도 사이코바이오틱스 개발의 근거 중 하나다. 더욱이 장내미생물은 스트레스, 불안 및 우울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뇌 영역인 해마의 세로토닌 수치에도 영향을 미치고 단쇄 지방산, 특히 부티르산을 생산해 면역 신호 전달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렇게 대장은 히포크라테스 시절부터 정신 증상의 원인으로 지목되기 시작했고 20세기 초 자가중독 이론이 등장하면서 대장을 제거해 정신증상을 치료하려는 극단적 치료법이 짧게 유행한 후 사라졌지만, 21세기에 들어서 장내미생물이 정신 증상을 조절하는 주인공으로 다시 화려하게 부활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현재 많은 전임상연구가 그 이론적 근거를 뒷받침하고 있지만 사이코바이오틱스가 의미 있으려면 실제 임상에서 사용할 만한 수준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은 백 년 전처럼 이론만 가지고 요즘 말로 뇌피셜로, 대장을 잘라내는 등의 극단적 치료를 환자에게 적용하는 시대가 아니다. 즉, 환자에게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완벽한 이론적 근거 위에 실제 다양한 단계의 임상연구와 최종적으로 그 효과가 위약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한 이중맹검 임상연구를 충분히 제시해야 한다. 현실에서는 인간 질병의 복잡성으로 인해 새로운 치료법 중 전임상 평가에서부터 성공적인 임상 시험의 약물 개발 과정을 통과한 극히 일부만이 환자에게 사용된다.

그렇다면 현재 사이코바이오틱스는 얼마나 탄탄한 근거가 확보됐고 임상연구가 수행됐을까? 아쉽게도 긍정적인 이론 배경과 전임상연구 결과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대상으로 한 임상연구 결과는 미미한 편이다. 실제 수행한 임상연구도 대부분 그 수가 적거나 환자보다는 건강인을 대상으로 한 건강식품 개발 수준의 연구였다. 연구 방법론 또한 수준이 높지 않고, 순수하게 우울증과 같은 정신 질환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보다는 과민성장증후군에서 우울을 평가한 연구, 즉 혼란요인이 많은 연구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사이코바이오틱스는 아직 전통적인 의미의 약제 지위를 얻기에는 한참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분야의 연구는 점점 늘어나 이론적 배경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쌓이고 있고 동시에 정신 증상에 대한 치료법 개발이 쉽지 않다는 점으로 향후 사이코바이오틱스의 전망은 희망적이라고 볼 수 있다.

 

김용성
소화기내과 전문의
원광의대 소화기질환연구소 겸임교수
좋은숨김휘정내과 부원장
Journal of Neurogastroenterology and Motility 부편집장
대한상부위장관헬리코박터학회지 부편집장
대한위대장내시경학회 학술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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