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를 만난 후 창의력이 생겨 예술가가 된 사람
치매를 만난 후 창의력이 생겨 예술가가 된 사람
  • 황교진 기자
  • 승인 2024.06.20 15: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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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측두엽치매를 앓지만 놀라운 그림을 그리는 뎁 조브(Deb Jobe)
치매여도 즐거운 삶을 영위하는 법

미국 신경과학회에서 발행하는 <Brain&Life> 6‧7월호에 전두측두엽치매를 앓는 뎁 조브라는 여성이 화가로 활동하는 이야기가 소개됐다.

 

뎁 조브(Deb Jobe) 제공

뎁 조브는 2022년 56세에 피질기저핵증후군(Corticobasal syndrome, CBS)과 관련된 전두측두엽치매(Frontotemporal Dementia, FTD) 진단을 받았다. 조브는 미국 알츠하이머협회 전국 초기 단계 자문 그룹(Early Stage Advisory Group, ESAG)의 일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ESAG는 알츠하이머병 초기 단계의 사람들로 구성돼 있으며 질병의 진행을 초기 단계에서 멈출 수 있는 치료법이 무엇인지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하며, 병을 앓는 개인의 관점을 중요시한다. 뎁 조브는 이 자문 그룹 봉사자로 미국 전역의 미디어와 시청자들에게 치매에 걸린 생활에 대한 개인적인 통찰력과 경험을 공유했다. 미국은 치매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데 이러한 자문 그룹을 활용한다.

<Brain&Life>는 치매를 만나도 위축되지 않고 즐거운 삶을 영위하는 사례로 뎁 조브를 소개했다. HR 분야의 전문가로 일하다가 초로기 치매(Pre-Senile Dementia)에 걸렸다는 청천벽력의 소식을 받아들인 후 자신의 삶이 불만족스럽고 즐거움이 사라지는 일이 없도록 상담, 치료, 인생 설계, 알츠하이머병 지지 모임 등으로 삶을 전환했다. 그리고 그녀는 예술가라는 새로운 직업을 얻었다.

2년 전만 해도 조브는 예술가라고 불리지 않았다. 그녀의 남편 존은 아내의 그림은 평범하다 못해 형편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2022년 치매 진단을 받은 후 조브는 갑자기 자신의 창의성을 활용하기 시작해 가족과 주변을 놀라게 했다.

미국 전두측두엽변성협회에 따르면 FTD는 미국에서 약 6만 명이 앓고 있으며 60세 미만에게 가장 흔한 치매로 알려져 있다. 배우 브루스 윌리스와 토크쇼 진행자 웬디 윌리엄스도 이 치매 진단을 받았다. FTD는 뇌의 전두엽과 측두엽이 손상돼 영향을 받는 뇌 부위에 따라 행동, 성격, 언어에 변화를 일으킨다. CBS는 정보를 처리하고 움직임을 제어하는 뇌 영역이 축소돼 경직, 떨림, 불수의적 수축, 경련과 같은 문제를 일으키는 일련의 징후와 증상을 의미한다.

 

뎁 조브의 그림 / Brain&Life

조브는 시누이가 성인용 컬러링북과 색연필을 선물하면서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윤곽선이 그려진 도안을 단순히 채우기만 했지만, 곧 색연필과 파스텔로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첫 번째 작품은 분홍색 꽃잎이 겹겹이 쌓인 장미였다. 손자를 위해 파스텔로 은하를 그렸고 남편을 위해 뾰족한 신화 속 용을 그렸다. 조브는 색연필과 파스텔 외에도 수채화, 마커, 오일 파스텔을 사용할 줄 알게 됐다.

현재 세인트루이스에 거주하는 조브(58세)는 “미술을 하면서 많은 평화를 찾았습니다. 그림은 제 마음을 안정시켜 주고 다른 모든 걱정을 사라지게 해줍니다”라고 말했다. 그녀의 그림은 긍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냈고 기쁨을 가져다주었다.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 대학교(UCSF) 웨일 신경과학연구소의 신경과 교수인 브루스 밀러(Bruce Miller) 박사는 FTD 진단 후 창의적인 능력이 나타나는 것은 전혀 드문 일이 아니라고 한다. 밀러 박사는 1996년부터 예술과 FTD의 연관성을 연구해 왔다.

2023년 의학저널 <자마 뉴롤로지(JAMA Neurology)>에 실린 이 주제의 연구 저자 중 한 명인 브루스 밀러(Bruce Miller) 박사는 “FTD에서 뇌의 앞쪽 기능이 상실되면 뇌의 뒤쪽이 활성화됩니다. 우리는 어떤 종류의 예술에도 관심이 없던 사람들이 시각 예술 분야에서 다작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신경 퇴행성 질환의 여러 단계에 있는 환자들의 약점뿐만 아니라 강점도 함께 연구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밀러 박사와 여러 기관의 연구진은 자마 뉴롤로지 연구에서 FTD 환자 689명의 의료 기록을 검토한 결과 17년 동안 창의력이 증가한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대부분 그림을 그렸지만, 일부는 그림을 포함해 조각하고, 도자기를 만들거나 퀼트를 만들었다. 연구진은 예술가 그룹의 뇌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 이들을 창의적이지 않은 FTD 환자군과 건강한 대조군과 비교했다. 세 그룹 모두 MRI를 촬영했다. FTD를 가진 두 그룹은 좌측 측두엽의 부피가 감소했지만, 예술가 그룹에서 뇌 부피 감소가 더 두드러졌다. 과학자들은 대조군에서 FTD의 영향을 받은 측두엽 영역의 활동이 적은 사람들이 시각적 연관성에 관여하는 뇌 영역(배측 후두엽)에서 더 많은 활동을 하는 것을 발견했다. 치매로 측두엽이 손상되면 시각적 연상에 관여하는 영역에 대한 통제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연구진은 추측했다.

이 아이디어를 테스트하기 위해 연구진은 양전자 방출 단층 촬영 영상을 사용해 FTD 환자 한 명의 뇌 변화를 관찰했다. 환자의 치매가 악화됨에 따라 전두엽과 측두엽의 활동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시각적 연상에 관여하는 영역이 더 활발해졌다.

2021년 신경전달(Neural Transmission) 관련 논문에서 저자들은 다양한 형태의 FTD를 가진 사람들의 사례 연구를 살펴본 결과, 창의성은 치매 증상의 정도에 따라 첫 증상 발생 후 2년에서 8년 후에 나타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한 초기에는 환자들이 사물과 주제를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묘사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림은 더 추상적이거나 상징적으로 변했다. 논문 저자들은 이러한 표현적 결과물이 내면의 삶이나 치유의 한 형태를 전달하려는 시도라고 이론화했다.

FTD에서는 뇌의 더 깊은 영역이 퇴화하는 반면 시각, 청각 및 운동 피질은 상대적으로 손상되지 않아 창의력을 촉진할 수 있다. 이 능력은 질병이 진행되고 환자의 신체적 장애가 심해질수록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2019년 배우이자 작가 제이크 브로더(Jake Broder)가 쓴 연극 <UnRavelled>는 캐나다 과학자이자 화가인 앤 아담스와 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의 관계를 탐구하는 작품으로, 두 사람 모두 의사소통 능력에 영향을 주는 일차 진행성 실어증이라는 일종의 FTD를 앓고 있는 내용이다. 밀러 박사는 “이 FTD가 두 사람의 뇌 회로를 변화시켜 앞부분과 뒷부분의 연결이 바뀌면서 창의력이 급격히 저하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뎁 조브는 더 이상 운전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요리를 하지 않으며, 지팡이를 짚고 다리에 보조기를 착용하고 걷는다. 하지만 매일 그림을 그리며 창의적인 예술활동을 하는 일은 그녀에게 성취감을 선사했다. 치매 진단을 받은 직후 조브는 “아직 젊은데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라고 말했으나 “그림을 그리는 능력을 얻으면서 다시 무언가를 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걸 잃고 싶지 않아요”라며 현재 창의적인 작품 활동을 하는 자신을 자랑스러워한다.

 

Primary Source
www.brainandlife.org/the-magazine/articles/2024/june-july-2024/frontotemporal-dementia-unlocks-creativity-in-some-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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