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당금 쌓는 제약업계...임상 재평가 실패 시 대규모 환수 우려
국내 제약사가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콜린알포세레이트(Choline Alfoscerate)’ 성분 제제 관련 항소심에서 연달아 패소한 가운데 향후 업계의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뇌 기능 개선제로 알려진 콜린 제제는 중장년층에게 치매 예방제나 뇌 영양제로 인식되면서 최근 시장 규모가 급속하게 커졌으나 효능 논란과 함께 오남용 문제에 휘말렸다. 이와 함께 과다 처방으로 건강보험 재정에 막대한 부담을 준다는 비판에도 부딪혔다.
급성장하는 콜린 제제 시장을 두고 보건 당국이 임상 재평가와 더불어 급여 환수라는 강수를 두자, 업계도 종근당과 대웅바이오를 주축으로 일제히 소송전에 나섰다.
당국은 콜린 제제에 대해 임상적 유용성을 입증할 근거 문헌이 없다고 몰아세웠다. 이에 업계는 이미 등재된 의약품을 선별급여로 전환하는 건 위법이며 이미 장기간 처방된 의약품으로 유용성이 검증된 성분이라는 논리로 맞섰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20년 6월 23일 콜린 제제 의약품에 대한 임상 재평가를 고시하고 콜린 제제의 유효성 입증을 제약사들에 요구했다. 업계는 12월 23일 임상시험 계획서를 제출했고, 이듬해 6월 10일 계획 변경 승인을 거쳐 현재 임상 재평가가 진행 중이다.
앞서 복지부는 2020년 5월 18일 ‘건강보험약제 급여적정성 재평가 시범사업 공고’를 내고 <약제 급여 목록 및 급여 상한금액표>에 등재된 콜린 제제와 관련해 ▲임상 유용성 ▲비용 효과성 ▲사회적 요구도를 기준으로 재평가했다. 그리고 석 달 뒤인 8월 26일, 복지부 보험약제과는 치매만 임상적 근거를 인정해 기존 급여 유지(본인부담율 30%)로 결정하고 뇌 대사 관련 등 나머지 질환은 선별급여(본인부담율 80%)를 적용하는 내용의 개정 고시를 발표했다.
업계는 강하게 반발했다. 종근당 측은 서울행정법원에 선별급여 적용 고시 취소 청구와 집행정지를 신청했다. 이후 집행정지가 인용된 상태에서 소송을 진행했으나 2022년 7월 27일 패소했다. 이에 항소하고 선별급여 효력정지도 신청해 인용됐지만 재판부는 당국의 손을 들어줬다. 대웅 측도 같은 소송을 걸어 2022년 12월 10일 1심 패소한 뒤 항소해 재판이 진행 중이다.
당국과 업계는 급여 환수 문제를 두고도 법적 다툼을 이어갔다. 복지부는 2020년 12월 14일 공단에 제약사들과 보험 급여 환수 관련 협상을 추진하라고 명령했다. 임상 재평가가 실패해 품목허가가 취소되면 식약처에 계획서를 제출한 날이나 승인일부터 약제급여목록표에서 제외된 날까지 지급한 급여를 환수한다는 것이다.
이후 협상은 기한이 거듭 연장되면서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복지부는 2021년 6월 2일 공단에 2차 협상 명령을 내렸고, 제약사들은 판매한 의약품 청구액(본인부담금+공단부담금) 중 시기에 따라 적게는 10%, 많게는 30%까지 반환하는 내용으로 공단과 급여 환수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제약사들은 협상 명령과 협상 통보에 대해 법률적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재량권을 일탈·남용해 모두 취소돼야 한다며 서울행정법원에 잇달아 소를 제기했다.
대웅 측은 2020년 12월 30일, 종근당 측은 2021년 1월 8일에 각각 1차 협상 명령 및 협상 통보 취소 소송을 제기했으나 모두 패소했다. 대웅 측은 항소를 포기했다. 종근당 측은 이에 불복해 항소했지만 기각됐다.
양측은 2021년 6월 23일 각각 2차 협상 명령 및 협상 통보 취소 소송도 냈다. 대웅 측은 2022년 2월 11일 1심 패소했고, 종근당 측 역시 결국 패소했다.
당국과의 법적 다툼에서 연전연패한 업계가 아직 많이 남은 재판에서 상고 등 소송을 계속 이어갈지도 주목된다. 이번 재판 결과가 당장 업계에 재무적 손실로 이어지진 않겠지만 임상 재평가에 실패하면 막대한 환수액을 부담할 전망이다. 처방액이 5,000억 원 규모에 달하는 콜린 제제 시장에서 매출이 큰 업체는 이 리스크에 대비해 관련 충당금을 상당히 쌓았다.
다만 콜린 제제는 약가 인하나 급여 정지를 대상으로 하는 약제비 환수환급법(지난해 11월 20일 시행) 적용 대상에서 제외될 것으로 보인다.
공단 관계자는 “이미 제약사와 계약이 돼 있어 임상시험(재평가) 결과 부분은 그 계약 사항에 따라 필요하면 환수 조치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