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남긴다. 아디오스 코로나19 마스크.
오늘 당직 중에 AM 0:00 시를 기해서 병동 올라갈 때부터 적용된다.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 감염내과 김태형 교수의 페이스북 글과 사진이다.
5월 1일부터 병원급 의료기관에 남아 있던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됐다. 코로나19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스러워했던가. 코로나 팬데믹보다 무서움이 덜할지 몰라도 정치, 사회, 문화에 스며 있는 ‘과욕'이라는 바이러스는 죽지도 물러나지도 않는다.
역사적으로 많은 미생물이 인류를 괴롭혀 왔는데 중세에 원인을 몰라 많은 사람을 고통에 빠트린 ‘맥각중독증’이 있다.
맥각중독증에 걸리면 정신이 이상해지는 환각 증세에다 온몸이 불타는 듯한 고통이 동반되며, 실제로 손발이 불에 덴 듯 검게 변하고 결국 떨어져 나가기까지 했다. 원인을 몰라 공포에 떨게 한 병이었다.
로마 시대 줄리어스 시저의 군대가 이 병으로 고생했고, 994년 프랑스에서 무려 5만 명이 이 병으로 죽었다. 1722년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의 병사 2만 명이 이 병으로 사망해 서유럽 침공 계획을 포기시킨 것이 맥각중독증이다. 사람들은 환각 증세 때문에 마녀가 악마의 저주를 불러왔다고 하여 무고한 사람들을 마녀로 몰아 죽이기도 했다.
이 맥각중독증의 원인은 의외로 단순했다. 귀리와 같은 곡식에 기생하는 맥각균이라는 곰팡이가 환각 증상과 혈관 수축을 일으키는데 피부가 불에 덴 듯 검게 변하는 괴저를 동반해 공포에 빠트렸다.
당시 유럽에서 주식으로 먹은 호밀빵이 맥각균에 오염돼 있었다. 결국 빵이 원인이었는데 당시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몰랐다. 원인이 밝혀진 후에는 밀을 수확할 때 반드시 맥각을 없애는 처리를 한다. 지금은 맛있게 먹는 빵이지만 당시 호밀빵을 먹으면 정신이 미치고 피부가 검게 변하고 죽어가기에 사람들은 그것이 맥각중독증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한동안 ‘미친 빵’으로 불렀다.
1093년 프랑스에서 이 병을 앓는 환자들을 돕기 위해 칙령을 내렸는데 이 칙령의 수호성인이 ‘성 안토니오’였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손발이 불에 타는 듯한 맥각중독증을 ‘성 안토니오의 불’(Saint Anthony's fire)로 불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당시 이 병을 치료하려고 성 안토니오 수도원에 간 사람만이 회복됐다.
그 이유는 성 안토니오 수도원은 호밀빵을 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순례객들이 자신이 가져온 호밀빵을 다 먹으면, 수도원에서 제공되는 과일을 먹으면서 호밀빵이 일으킨 맥각중독에서 해독됐다. 회복의 이유를 몰랐던 당시 병에 걸린 사람들은 성 안토니오의 이름을 부르며 치료를 빌었다.
《빨간 구두(The Red Shoes)》에서 죽을 때까지 춤을 추는 소녀가 맥각중독증이었다는 분석이 있다. 《빨간 구두》는 덴마크에서 전해져 오던 설화를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이 정리한 동화이며 《분홍신》이라는 제목으로도 불린다. 빨간 구두를 신으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계속해서 춤을 추게 된다. 아이유의 노래가 이 동화에서 영감을 받았다. 동화 속 주인공 카렌이 장례식(또는 예배)에 빨간 구두를 신고 가는 바람에 저주를 받아 죽을 때까지 빨간 구두와 함께 춤을 추며 결국 고통을 못 참고 저주를 풀기 위해 발을 자른다는 이야기다. 동화치곤 잔혹하다. 빨간 구두는 금기, 욕망, 타락을 상징한다.
맥각중독으로 고통받던 당시 사람들에게 성 안토니오 수도원은 최고의 전인치유센터였을 것이다. 사실 영험해서가 아니라 호밀빵을 안 먹거나 밀에 붙는 곰팡이 맥각균을 없애면 되는 간단한 치유책이었는데 말이다.
<죽은 시인의 사회>의 오 캡틴! 나의 캡틴! 존 키팅 선생으로 분한 로빈 윌리엄스는 안타깝게도 2014년 8월 11일 향년 63세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아내와 세 자녀를 뒀는데 그가 트위터에 남긴 마지막 글은 숙녀가 된 딸의 생일을 축하하는 글이었다. “생일 축하한다. 젤다 윌리엄스. 4반세기가 지났지만, 항상 나한테는 꼬마 숙녀구나. 사랑한다.”
탁월한 코미디 배우이자 사회적 활동도 활발하게 한 로빈 윌리엄스는 마약과 알코올 중독으로 상당한 고생을 했다. 2006년 재활 기관에 스스로 입원했을 정도로 치료를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알코올 중독을 극복하고 다시 예전의 유쾌한 배우의 모습으로 돌아올 것을 기대했지만, 2014년 12월 개봉한 <박물관이 살아 있다: 비밀의 무덤>이 유작이 됐다. 검사관은 질식사라고 밝혔고 스스로 목을 맨 것으로 결론이 났다.
사망하기 전에 아이스크림 가게 알바생과 찍은 사진에서 알바생은 활짝 웃고 있지만, 윌리엄스는 어딘가 무거운 표정이다. 당시 헤이즐든 중독치료센터 재활클리닉에서 치료받던 중이었다고 한다.
그의 아내 수전 윌리엄스는 2015년 11월 3일 미국 월간지 피플(People)과의 인터뷰에서 “우울증은 로빈을 죽게 한 50가지 이유 가운데 작은 하나일 뿐이며, 루이소체치매(Lewy Body Dementia)가 남편을 죽음으로 내몬 것 같다”고 밝혔다.
루이소체치매는 알츠하이머병 다음으로 많은 치매 질환이다. 근육이 뻣뻣해져 갑자기 주저앉는 등의 운동기능 장애와 함께 조울증, 환각 증상을 일으킨다. 수전은 “남편의 증상은 사망하기 몇 달 전부터 급속도로 악화했는데, 하루는 문 위치를 잘못 봐 머리를 심하게 다치기도 했다”며 “마치 댐이 붕괴되는 것처럼 몸과 마음이 빠르게 무너져 갔다”고 말했다.
루이소체치매는 뇌세포를 손상하는 ‘알파시뉴클레인(α-Synuclein)’이라는 단백질에 의해 발병하는 질환이다. 대뇌피질과 뇌간이란 부위에 비정상적인 단백질 덩어리가 쌓여 뇌세포 손상을 일으켜 발생한다. 파킨슨병과 비슷하면서 다르다. 루이소체 치매 환자에게서 파킨슨 증상이 동반돼 나타나기도 한다.
파킨슨병 환자의 약 40%가 치매를 앓는데 이는 파킨슨병 발병 후 1년 이상 지난 뒤 나타난다. 하지만 루이소체 치매는 치매 증상이 먼저 생기고 파킨슨 증상이 나타나거나 거의 동시에 나타나는 특징을 보인다.
초기에는 기억력이 정상일 수 있으나 질환이 진행되면서 기억력이 점점 나빠진다. 초기 루이소체치매는 치매 약물에 알츠하이머병 치매보다 좋은 효과를 볼 수 있기에 빨리 발견하는 게 중요하다. 문제는 로빈 윌리엄스의 사례처럼 루이소체치매의 증상은 복잡한 데다 환자별 증상이 다양해 초기에 정확한 진단을 받기 어렵다는 점이다.
루이소체 치매의 대표적인 증상은 환시, 렘수면행동장애, 인지 변동, 파킨슨 증상이다.
헛것을 보는 '환시'는 가장 대표적인 증상이다. 아주 구체적이고 생생한 환시를 보기 때문에 이를 정신질환이라고 오해해 항정신병 약물을 쓰면 환자는 움직이지 못하고 자리에 눕는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렘수면행동장애는 잠을 잘 때 꿈의 내용을 그대로 행동으로 옮기는 증상이다. 싸우는 꿈을 꾸면서 옆에서 자는 사람을 때려 다치게 하거나, 벽을 주먹으로 쳐서 본인이 다치는 경우가 있다.
인지 변동이 심해진다. 낮에 멍때리거나 낮잠을 많이 자는 모습을 보인다. 따라서 낮잠을 자주 많이 자고, 멍한 모습이 많이 나타나면 루이소체치매를 의심해 볼 수 있다.
정리하자면 루이소체치매는,
* 알츠하이머병과는 다른 병으로 파킨슨병과 관련이 있다.
* 치유할 수는 없지만 진행을 늦출 수는 있는 퇴행성이다.
* 뇌의 인지영역과 운동영역에서 망가져 가는 신경세포에 발견되는 비정상적 단백질이 원인이다.
* 여성보다 남성에게 흔히 발병한다.
* 인지 증상, 신체 증상, 지각 증상, 행동 증상 및 운동 증상에서 문제를 드러내는 복잡한 질병이다.
(참고, 《가족간병인들이 일러주는 루이소체치매》 헬렌 뷰엘 윗워스, 제임스 윗워스 지음, 신은주 옮김)
치매, 맥각중독증, 코로나19 등 인류를 위협한 질병은 정보를 명확히 아는 데서 치명적인 전투냐, 조금 긴 사건이냐로 성격이 갈린다. 코로나 팬데믹 당시 정보가 없으니, 검증이 안 된 치료법이 유행하는 등 말도 안 되는 방법이 쏟아졌다. 중세 시대 맥각중독증은 호밀빵의 맥각이 원인인데 마녀사냥까지 벌이며 벌벌 떨며 엉뚱한 구호(?)를 부르짖고 매달렸다. 특히 권력을 가진 자들이 바이러스를 정치적 입지 강화에 활용한 그 악한 역사는 코로나 팬데믹에서도 재현됐다.
노인 인구가 늘면서 루이소체치매를 비롯한 여러 원인의 치매는 주변에 흔하게 진단받고 고생하는 질병이다. 그런데도 유독 정보 습득에 미진하다. 치매 환자를 모시는 보호자들도 ‘늙으면 걸리는 병’ 정도에 머물러 깊이 알려고 하지 않는다. 치매 경험이 없는 가족은 치매를 평생 만나지 않을 줄로 안다. 치매 한 가지 주제로만 얼마나 많은 책이 있는지 디멘시아도서관의 장서들을 보면 놀랄 것이다. 정보가 많은 데도 관심이 없으면서 잘못된 정보로 우리 가까이 와 있는 질환이 치매다.
코로나19는 치료법이 밝혀졌다. 이제 마스크도 벗었으니, 맥각중독증처럼 훗날 <심야괴담회>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같은 방송의 소재로 쓰일 것이다. 치매도 시간이 걸리고 쉽진 않겠지만 언젠간 종류별로 맞는 치료법이 나올 것이다.
치료법이 나오기 전에는 역사적으로 그래왔듯 인간은 공포심에 유령이나 귀신의 작용으로 상상한다. 마녀사냥을 하거나 주술에 의지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은 지금도 유사한 형태로 잔존한다. 이런 일상 가까이 있는 병은 의사만 공부하고 연구해야 하는 숙제가 아니다. 치매, 알아야 이기고 알려고 해야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