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은미 칼럼] 벤자민 버튼의 시간처럼 인지장애 어르신의 시간도 거꾸로 간다
[양은미 칼럼] 벤자민 버튼의 시간처럼 인지장애 어르신의 시간도 거꾸로 간다
  • 양은미 대표
  • 승인 2024.04.03 15: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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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 건강을 위한 6가지 수칙, '진인사대천명'

제81회 아카데미 3개 부문 수상작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 주인공 벤자민은 80대 노인 몸으로 태어나 나이가 들수록 신체는 젊어지고, 인생의 황금기를 지나 점차 인지기능은 노화되며 어린이가 되어 간다. 이후 벤자민은 계속 어려지며 자기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그리고 결국 할머니가 된 사랑하는 여인의 품에서 치매 신생아로 죽음을 맞이하는 거꾸로 인생을 마친다.

최근 기억부터 점점 사라지면서, 추억이 잊히고, 인지기능이 저하돼 어린아이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치매 어르신을 보고 있으면 벤자민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거꾸로 가는 것 같다. 시간은 똑바로 흐르든 거꾸로 흐르든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흘러가기 때문에 시간의 흔적인 기억은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마음생각연구소 제공
마음생각연구소 제공

치매 부모나 조부모를 돌보는 지인들을 만나면 치매 때문에 일어나는 힘든 경험을 많이 듣게 된다. 가끔 환각에 관한 이야기가 간간이 섞여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기억력 저하 때문에 생겨나는 일이다. 약을 먹는 것을 잊어버리고는 끝까지 먹었다고 우긴다든지, 뜨개질을 너무 많이 해서 목도리가 옷장에 쌓여가는데도 뜨개질하는 법을 기억하는 게 다행이라며 안도한다. 치매 환자 가족은 뭐 하나라도 더 오래 기억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옥순로그’를 보며 느끼는 추억의 소중함

지난 3월 26일 송파노인종합복지관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옥순로그>를 상영해 어르신들과 함께 감상했다. <옥순로그>는 2023년 전주국제영화제 코리안시네마 부분 초청작이며 EBS 국제다큐영화제 서울산업진흥원 최우수상 다큐멘터리 영화다. 사람들에게 공감받고 감동을 준 작품으로, 영화감독인 김나연 씨와 동생 동주 씨 그리고 치매에 걸린 옥순 할머니의 좌충우돌 치매 돌봄 일상을 담고 있다. 옥순 할머니는 손주들을 이뻐하는 다정한 할머니인데 어떤 사건 이후 기억이 멈춰버렸다. 영화 안에서 특정하지 않았으나 정황상 아들 죽음 이후라고 추측한다. 아들을 먼저 보내는 일이 어머니에게는 정신적으로 큰 충격일 수밖에 없다. 손녀인 김 감독은 사라져 가는 할머니 기억을 붙잡고자 기록을 하기 시작했다.

 

마음산책연구소 제공
영화 <옥순로그> 포스터 / 소나기커뮤니케이션

영화 내내 가족 간 끈끈한 사랑과 치매 환자 돌봄의 고통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여러 장면이 관람하는 어르신들의 눈물을 자아냈고, 간간이 난처한 할머니 입장을 공감하며 털어놓는 안타까움이 들렸다. 치매로 아버지를 보낸 지인은 차마 영화를 제대로 보기 힘들었다고 한다. 치매 돌봄의 고통에 공감하며 돌아가신 아버님이 그리워 더욱 그랬을 것이다. 치매 환자 가족에게는 추억이 더 소중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간은 붙잡을 수 없으나 행복한 시간의 흔적은 추억으로 남는다. 시간이 지나면 치매 환자는 이런 추억도 함께 공유할 수 없고, 심지어 자기 존재도 기억하지 못할 순간이 올 것이라는 두려움이 크다. 그래서 더 많이 사진을 찍고 영상으로 시간의 흔적을 남겨 끊임없이 함께 반복해서 보며 기억의 단서를 제공하려고 노력한다. 회상 활동으로 기억력을 조금이라도 더 붙잡아 두고 싶은 것이다.

옥순 할머니는 예쁜 치매 환자다. 아무리 예쁜 치매 환자라도 돌보는 가족은 시간이 흐르면서 힘들고 지쳐간다. 하물며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는 괴팍한 행동과 성질을 부리는 치매 환자의 가족은 얼마나 힘들겠는가. 그래서 사람들은 나이 들어 치매에 걸리더라도 예쁜 치매에 걸리고 싶다. 그래야 가족과 하루라도 더 편안하고 행복하게 보낼 수 있으니까.

 

피할 수 없다면 예쁜 치매로 오래오래

이윤환 교수는 노인 생활 습관과 인지 건강 관계를 연구하여 6가지 인지 건강 수칙으로 ‘PASCAL’을 만들었다. PASCAL은 Physical Activity(신체활동), Anti-Smoking(금연), Social Activity(사회활동), Cognitive Activity(인지활동), Alcohol in Moderation(적당한 음주), Lean Body Mass and Healthy Die(군살 없는 체질량과 건강한 식단)의 첫 자를 따서 기억하기 쉽게 만들어 전 세계에 소개했다. 이 교수는 이 수칙을 ‘진인사대천명’의 첫 글자를 따서 입에 딱 붙는 문구로 만들었다.

진: 진땀 나게 운동하고
인: 인정사정없이 담배 끊고
사: 사회활동과 긍정적인 사고를 많이 하고
대: 대뇌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고
천: 천박하게 술 마시지 말고
명: 명을 연장하는 식사를 해라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을 한자로 풀면 ‘노력을 다한 후에 천명을 기다린다’는 뜻이다. 진인사대천명 건강 수칙을 열심히 지키고 타고난 수명대로 인생을 마무리하자는 의미도 함께 담고 있다.

‘진땀 나게 운동’ 하면 뇌의 혈액 순환을 촉진하고, 뇌신경을 보호하며 신경세포 간의 연결을 원활하게 해 뇌 기능을 개선한다. 1주일에 3회 이상 걷기만으로도 인지장애 발병 확률을 33% 낮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70대 이상의 노인은 자기 건강 상태에 맞춰서 해야 한다. 운동 전후에 준비 운동과 마무리 운동을 하는 것도 잊지 말자.

‘인정사정없이 금연’이 건강에 필요하다는 것은 대부분 공감한다. 흡연은 동맥경화증을 유발해 뇌혈관과 심장 혈관을 좁게 만든다. 이는 혈관 치매에 관련된 뇌 질환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래서 혈관 건강을 위해 금연은 필수다.

‘사회활동’은 뇌에 강한 자극을 준다. 사람을 만나면 얼굴 정보가 후두엽의 시각피질에서 측두엽 쪽으로 정보가 흐르면서 얼굴을 인식한다. 친구인지 적인지 판단을 위한 감정을 읽어내는 과정으로 편도체가 열심히 일한다. 사회적 맥락과 공감 등을 위해 전두엽과 관련 신경망이 움직인다. 그리고 얼굴과 이름 등 관련 정보를 연결하기 위해 기억력이 필요하다. 이처럼 사람을 만나는 사회활동은 뇌를 바쁘게 움직이기 때문에 뇌 자극이 강하게 일어난다. 긍정적인 사고가 두뇌 건강에 좋다는 것은 스트레스 완화 측면에서 두말할 것도 없다.

‘대뇌 활동’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사고 집중력, 정확성과 시간적 기한을 요구하는 일을 하면 인지장애에 걸릴 위험이 30% 정도 낮아진다고 한다. 치매 예방을 위해서 다양한 인지활동으로 좌뇌, 우뇌를 균형 있게 운동하자. 복지관, 문화센터 등 다양한 클래스를 제공하는 교육기관이 주변에 찾아보면 많이 있다. 사회활동도 하고 인지활동도 할 좋은 기회들을 활용하자.

‘천박하게 술 마시지 말라’는 과음의 위험을 경고하는 수칙이다. 중년기부터 과다음주를 한 사람은 노년기에 인지장애를 겪을 확률이 2.6배 높다고 한다. 술로 인해 알코올성치매가 발생할 수 있다. 술을 먹으면 뇌가 전반적으로 위축되면서 두뇌 건강을 위협한다.

‘명을 연장하는 식사를 해라’는 비만에 대한 위험을 알리는 수칙이다. 치매 예방은 체지방 관리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를 위해 규칙적인 식사, 천천히 먹기, 채소류, 해조류 등 식이섬유가 풍부한 식품을 먹고 기름기 적은 음식을 먹도록 노력한다. 중년의 식습관은 노후 삶의 질까지 영향을 미친다. 중년기에 비만이면 노년기에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위험이 2배, 혈관 치매에 걸릴 위험은 5배 높다고 한다.

‘진인사대천명’ 건강 수칙에 더해서 치매 위험 요인으로 꼽히는 3대 성인병인 고혈압·고지혈·고혈당을 관리하고, 만성 스트레스 관리, 수면 건강을 관리하면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 그리고 경도인지장애나 경도 치매부터라도 건강하게 관리한다면 예쁜 치매로 길게 살아갈 수 있다.

 

양은미
(주)마음생각연구소 대표이사
세계사이버대학교 겸임교수
(사)건강소비자연대 건강부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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