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 떼려다 혹 붙였네’ … 병 고치려다 ‘치매’ 걱정까지
‘혹 떼려다 혹 붙였네’ … 병 고치려다 ‘치매’ 걱정까지
  • 강성기 기자
  • 승인 2023.04.14 17: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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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간 항콜린제 약물 복용 … 방광염·배뇨장애·진통제·우울증·알레르기

입마름도 항콜린제 부작용 … 고령 환자, 치매 유발 가능성 커 주의해야

작년에 35년 동안 다녔던 회사를 떠난 박철호(수원.61) 씨는 요즘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 항콜린제 약물을 사용한 약을 수년째 먹고 있는데 이 약물이 치매를 유발한다는 보도를 접했기 때문이다. 

항콜린제는 자율신경계 중 부교감신경 말단에서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 수용체를 차단하는 약물로 방광근육 수축, 심박동 저하, 혈압강하, 호흡근육 수축 등 부교감신경이 하는 일을 억제한다.

치매를 비롯해서 배뇨장애, 심장병, 우울증, 알레르기, 통증, 불면증, 소화기질환, 수면유도제 외에 일반 감기약에도 들어있을 만큼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발전기를 제조하는 중견기업에서 부사장으로 퇴직한 박철호 씨는 정년퇴직 2년 전부터 퇴직 후의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 미리 고민하면서 인생 후반부를 설계했다. 지금까지는 수동적으로 살았다면 퇴직 후 나머지 삶은 스스로 개척해나가자는 생각에 자신의 버킷리스트를 작성했다. 

먼저 국내 유명 산 100개를 정복하면서 국내 유명 섬 50곳 방문, 해외여행 10번을 목표로 정한 그는 지난해 말 퇴직한 후 지금까지 아내와 함께 월출산 등 9개의 산을 올랐다. 그동안 아내와 변변한 여행 한번 못 해본 그로서는 아내와의 등산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길게는 8년, 짧게는 6년 동안 먹어왔던 약 속에 치매 유발 물질인 항콜린제 성분이 들어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노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은 치매이다. 현대인들에게 환자 자신은 물론 가족들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병으로 인식되고 있는 치매환자가 내년이면 우리나라에서만 100만 명을 웃돌 것으로 전망된다. 

더군다나 항콜린제를 사용한 약을 중복해서 먹고 있어 두렵기까지 하다. 박 씨는 만성 방광염과 배뇨장애로 인해 전립선 수술까지 받았지만, 전혀 호전되지 않아 8년 전부터 지금까지 약을 달고 산다. ‘좋지 않은 일은 한꺼번에 온다’는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6년 전부터 원인 모를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면서 치료가 효과를 보지 못한 채 진통제에 의지하다가 우울증까지 겹쳐 몸이 만신창이가 됐다. 

여기에다 진통제 알레르기로 목둘레에 연분홍색 꽃과 같은 두드러기가 올라와 매일 알레르기약을 복용해야 한다. 그동안 입마름으로 고생한 것도 항콜린제 부작용이란 것도 이번에야 알았다. 

박 씨가 걸린 질병 중에서 항콜린제 약물을 사용한 약을 먹어야 하는 질병은 만성방광염, 배뇨장애, 진통제, 우울증, 알레르기 등이다. 최근 미국에서 항콜린제와 치매의 관련성을 조사한 연구 보고서가 발표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우울증 때문에 항콜린제를 복용한 경우 치매 발생 확률은 정상인보다 29%, 배뇨장애로 인한 복용 때에는 70% 더 증가했다. 특히 항콜린제를 최소한 3년 이상 매일 복용한 경우는 50% 가까이 위험도가 올라갔다. 

3년 전 조사에서도 이와 유사한 결과가 나왔다. 미국의 한 연구팀이 평균연령 74세인 노인 688명을 대상으로 추적 조사한 결과, 폭넓은 질환 치료에 널리 사용되는 항콜린제가 인지기능 저하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됐다. 전체 연구 대상자 중 3분의 1인 230명이 항콜린제를 복용하고 있었고 이 중 51%인 117명이 나중에 경도인지장애(MCI) 판정을 받았다.

의료계 관계자는 “항콜린제가 뇌에서 인지 기능과 관련된 신경 기능을 방해하거나 혈관에 작용해서 치매 위험도를 높이는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고령자가 항콜린제 약물을 복용할 때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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