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재산 분쟁 증가, 판결 핵심은 '행위 당시의 의사능력'
치매 재산 분쟁 증가, 판결 핵심은 '행위 당시의 의사능력'
  • 조재민 기자
  • 승인 2023.03.22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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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진단에 기반한 무조건적 의사능력 부정 지양 추세

고령화로 치매 진단을 받은 고령층이 늘어난 가운데 관련 재산 분쟁도 덩달아 급증하고 있다. 사건의 쟁점은 치매 환자의 법적 행위가 의사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가다. 

과거 판례를 살펴보면 치매환자의 의사능력은 대리인에 의해 결정되거나 무효로 보는 경우가 잦았다. 하지만 이 같은 판결이 '환자의 진정한 내심 의사를 반영했는가'라는 논란이 존재했다.

지난 2015년 서울중앙지법은 치매 진단 후 서명한 유언장에 대해 무효 판결을 내렸다. 약정서와 유언장 작성 당시 치매가 중증에 접어들어 법률적 의미와 효과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게 주된 이유다.

하지만 최근 판결에서는 변화된 경향이 자주 목격된다. 핵심은 치매환자의 행위 당시의 의사능력 여부다. 즉, 치매환자라도 법률행위 당시의 의사능력이 인정된다면 정당한 법률행위로 간주하겠다는 것이다.

최근 법원의 판례 경향에 따르면 치매 관련 재산 소송에 대해 치매의 여부보다는 행위 당시의 실질적 의사능력을 핵심 기준으로 판결을 내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월 대법원은 원고인 A씨가 사망한 고모할머니의 유언효력을 확인해달라는 소송에 대해서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

고모할머니인 B씨는 생전 중등도 치매를 앓았고, 이에 조카 C씨(A씨 작은아버지)는 2016년 B씨의 재산 관리와 기타 지원 등을 위해 성년후견인 지정을 청구했다.

하지만 B씨가 2017년 본인 명의 예금을 A씨에게 전액 상속한다는 유언장을 자필로 작성한 후 2020년에 사망했다. 성년후견인의 의견과 상관없이 별도의 유언장을 작성하면서 효력에 다툼이 생겨 A씨가 확인 소송을 제기한 것.

1심에서는 유언장의 효력을 부정했지만, 항소심에서는 성년후견이 개시되기 전이라면 의사가 유언장에 심신 회복 상태를 기재토록 한 민법 제1,063조 제2항이 미적용된다고 판시했다.

결국 후견인을 정했거나 그 과정에서 동의가 없어도 의사능력만 있으면 유언장의 효력을 인정한 것이 핵심이다.

또 21일 서울중앙지법의 판결도 의사능력을 주요 기준으로 판시했다. 대학에 재산을 기부한다는 유언장을 작성한 아버지의 의사결정이 치매 진단 후 이뤄진 데 따라 아들이 무효라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의사능력 시기를 중심으로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

치매 진단이 사실임에도 유언의 효력을 부정할 심신미약 등의 상태로 판단하기는 어렵다는 이유다. 유언 당시는 충분한 의사능력이 인정된다는 해석을 내린 것이다. 

최근 정치적으로 쟁점이 됐던 사안에서도 또다시 치매환자의 의사능력 여부가 중점적으로 다뤄졌다.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이던 무소속 윤미향 의원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여성인권운동가 길원옥 할머니의 치매를 이용해 기부금을 횡령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다.

결론부터 보면 해당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길 할머니가 치매 진단을 받았지만, 형법상 심신미약 상태에 이르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해당 사안은 K-MMSE(한국판 간이정신상태검사)를 판단의 근거로 삼았다. 재판부는 "해당 지표가 치매 진단을 위한 기능보다 건강보험 적용에 주로 활용되는 지표"라며 "치매를 판단하는 핵심 지표가 아니기에 치매로 의사능력을 상실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해당 사안도 행위 당시의 의사능력을 구체적 판단 기준으로 활용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치매 진단 시 의사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세부적인 의사능력과 내심 의사를 중점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법무법인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치매라면 의사 능력이 없어 유언장 등이 법적 무효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행위 당시의 명확한 의사능력을 핵심으로 판단한다"며 "실제 판결에서도 중등도 치매라고 해서 무조건 의사능력이 없다고 단정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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