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케어러(Young carer) 문제가 세계 주요 국가의 사회문제로 떠오르면서 국내에서도 관련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영 케어러는 늘어나는 고령 치매 돌봄과도 연관된 문제며 청년층의 사회진출 및 활동을 막는 국가 경쟁력의 저해 요인으로도 지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일본 등 고령 선진국은 중앙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에 나선 상태며, 민관 협력을 통해 실태조사, 연구 등이 펼쳐지는 추세다.
최근 보건사회연구원은 국제사회보장리뷰 특별기획 '영 케어러 현황과 시사점'을 공개했다. 영 케어러 문제와 관련된 해외사례를 조명해 국내 실정에 맞는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목적이다.
영 케어러(Young carer)는 지난 2014년 영국의 '아동가족법'에서 최초로 등장했다. 영국은 장애·질병·정신질환 등의 문제를 가진 가족이나 친척을 돌보는 18세 이하 청소년을 영 케어러로 정의했다. 하지만 현재 해당 정의는 단순히 나이의 범주를 넘어 더욱 확대되는 추세다.
최근 국회에서 개최된 '영 케어러 정책토론회'에 따르면 국내 영 케어러 인구는 점차 늘어나는 추세며, 가장 필요한 지원은 경제적 지원과 교육 보장, 심리 정서적인 것으로 확인됐다. 또 청년층의 경제활동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일본, "영 케어러 대응 국가역량 강화"
이미 일본 정부는 영 케어러를 중요한 사회문제로 인식하고 그 원인을 파악해 대국민 홍보 활동과 동시에 지원체계 구축에 집중하고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과 문부과학성은 지난 2018년 실시한 전국 실태조사를 토대로 연구 보고서를 작성했고, 영 케어러 조기 발견과 파악, 지원책 추진, 사회적 인지도 향상을 주요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후 일본에서는 해당 문제 대응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끌어냈고, 단기간에 정부의 실태조사와 보고서 작성부터 예산 편성까지 이뤄졌다.이를 토대로 마련된 주요 대책을 살펴보면 영 케어러의 지원 체계 구축에 집중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주요 대책은 ▲상담 지원과 복지서비스의 연계 ▲학습 지원 체제 구축 ▲영 케어러에 대한 맞춤형 복지서비스 운용(복지서비스 이용 경험 전무) ▲어린 형제자매가 있는 영 케어러에 대한 지원 마련 등으로 압축됐다.
영 케어러의 60% 이상이 행정기관과 보건센터 등 공적 기관을 이용하거나 상담한 경험이 없다는 현실을 반영해 마련된 대책이다. 이를 고려해 학습 지원체계를 마련하는 등 세밀한 맞춤형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눈여겨볼 점은 중앙정부 차원의 대책을 넘어 이미 지자체들도 본격적인 지원책 마련에 돌입했다는 부분이다. 최근 일본의 각 지자체는 영 케어러에 관한 조사를 적극적으로 시행하는 한편, 지원 대책도 활발히 모색하고 있다.
일본 사이타마현의 경우 지원 조례를 제정했고, 효고현은 영 케어러 상담 창구를 설치했다.
사이타마현은 2020년 3월에 전국 최초로 지원 조례를 제정해 영 케어러 지원을 위한 기본 이념, 현의 책무·역할, 사업자·관계기관의 역할, 교육기관의 역할, 추진 계획 책정, 홍보, 인재 육성, 민간 단체 지원, 재정상 조치 등에 관해 명문화했다.
일본 류코쿠대학 정책학과 안주영 교수는 한국도 최근 영 케어러에 주목해 관련 조사와 정책 수립을 진행하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안주영 교수는 "일본과 복지 체계가 유사한 한국에도 단기적 대책 마련을 넘어 영 케어러를 발생시키는 복지 체계에 대해 근본적인 고찰이 필요하다"며 "대상자 조기 발견 및 지원 정책의 마련과 동시에 예방을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영국, 영 케어러의 노동 가치 인정
영국의 영 케어러 지원책의 핵심은 돌봄에 대한 노동 가치의 인정이다. 이를 토대로 영국은 돌봄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가치를 인정하며 수당 등 정책적 지원을 실행 중이다.
즉, 비공식적 돌봄 노동자가 전문적인 돌봄의 공백을 최소화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함을 국가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국내의 요양보호사 가족 돌봄과 비슷한 성격이다.
영국의 정책 지원의 핵심은 돌봄노동의 역할 자체가 성인이 아닌 아동・청소년에게까지 확대되고 있다는 대목이다.
서울연구원 공간교통연구실 이봉조 초빙부연구위원은 영국을 포함한 선진국들이 한국보다 영 케어러 정책을 먼저 도입했기 때문에 국내 지원제도 도입에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시사점을 제공한다고 평가했다.
이 연구원에 따르면 영국은 이미 2001년과 2011년 인구총조사를 통해 돌봄 노동자 규모를 파악하기 위한 시도를 시작했다.
영국의 칠드런즈 소사이어티(The Children’s Society)는 영 케어러로서의 삶이 만 5세부터 시작될 수 있음을 밝히고 법적인 측면에서 무임금 돌봄 노동자의 개념을 포괄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봉조 연구위원은 "우리나라도 지역 내 영 케어러를 발굴・지원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의 교육 시설 등과 연계된 시스템화된 지원 조직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영 케어러를 단순히 18세 미만으로 한정하지 않고 법적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스웨덴 영 케어러 지원 초창기, 연구 세부화 주목
스웨던 역시 2010년부터 정부 주도로 영 케어러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됐다. 청년층의 정신건강은 경제 성장과 사회 발달의 중요한 동력임을 인식하고 연구를 시작한 것이다.
다만 연구 성과에 반해 강력한 제도적 지원으로 이어지지 못한 것은 아쉬운 점으로 지목됐다. 스웨덴도 영 케어러 관련 지원이 초기 단계다.
2022년 스웨덴의 지자체인 보로스(Borås)시가 영 케어러 위원회를 발족한 이후 전국적인 확대로 이어지고 있으며, 영 케어러 당사자를 조직에 포함해 돕고 목소리를 반영하고 있다. 또 영 케어러 대상 온라인 교육과 모임도 시작된 상태다.
북유럽연구소 하수정 소장은 "스웨덴의 연구사례는 영 케어러에 대한 프로파일링과 아동·청소년의 돌봄 활동에 대한 인식등에서 한국 사회에 다양한 시사점을 준다"고 평가했다.
이어 "국내도 영 케어러의 존재를 빠르게 인지하고 학교, 병원, 지자체가 정보를 공유해 지원해야 한다. 당사자의 목소리를 반영하거나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게 지원의 첫 단추"라고 덧붙였다.
늘어나는 치매환자와 함께 필수적으로 증가할 영 케어러를 지원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