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멘시아문학상 수기부문 장려상] 내게 남은 마지막 하루⑧
[디멘시아문학상 수기부문 장려상] 내게 남은 마지막 하루⑧
  • 천정은 작가
  • 승인 2021.10.13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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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은 작가
천정은 작가

Part8.우중씨의 건강한 하루

우리 센터에서 제일 큰 형님이다.
나이 92세 
우중씨는 오늘도 운동 중이다.
앉았다 섰다를 반복하며 다리 운동도 하고, 손 운동도 한다.
우중씨는 귀가 들리지 않아 보청기 2개를 하고서야 겨우 의사소통이 된다.
92세지만 다리도 짱짱하고, 힘도 세고, 누가 봐도 70대라 해도 믿을 것이다.
우중씨는 지팡이 없이도 걷고 뛸 정도로 체력이 좋다.
우중씨의 건강 비법이 궁금해서 몇날 며칠 동안 들여다봤다.
우중씨는 밥과 반찬을 전혀 남기지 않고, 다 드신다.
입맛에 안 맞는 반찬이 있을 법도 한데, 식판이 늘 깨끗하다.
뿐만 아니라, 늘 웃으면서 농담을 건넨다.
뿔테 안경사이로 작은 눈과 의치를 보이며 환하게 미소를 짓는다.
우중씨는 오늘도 일찍 와서 운동을 시작한다.
자전거를 스피드 하게 타시길래 운동을 잘한다고 했더니, 귀신 잡는 해병대 출신이라며 이 정도는 운동도 아니라고 했다.
추운 겨울날 해병대에서 훈련받고 두들겨 맞는 게 일상이어서 그런지 몸의 근육이 단단하다며 웃는다.
몇 리를 걷고 뛰며 궂은 날씨에도 쉬지 않고 힘든 훈련을 견디다보니 힘이 장사란다.
자신의 근육을 만져보라며 손을 내민다.
나는 당황하며 웃었지만 우중씨의 당당한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국가 유공자인 우중씨는 과거에 젊은 남자들은 무조건 전쟁터에 끌려갔다며 지금은 살기 좋은 대한민국이라고 했다.
배고파서 풀을 쑤어서 밥을 먹었다며 살기 어려웠던 과거를 이야기 했다.
그런 우중씨에게 밥을 남긴다거나 음식을 남긴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였다.
옆의 어르신들이 음식을 남기면, 우중씨는 왜 다 안 먹냐며 훈계를 했다.
90넘은 노인에게는 이 음식을 볼 때마다 과거 못 먹고 살았던 아픔이 생각나는 듯 했다.
요즘이야 먹기 싫으면 버리고, 부족함을 느낄 수 없는 현실이지만 말이다.
그러다 보니 음식물 쓰레기는 늘 산더미다.
나 역시도 반성했다.

우중씨는 늘 예의를 중요시하며 인사를 잘해야 한다고 했다.
한번은 내가 우중씨에게 인사를 못한 적이 있는데, 그날 대통 혼이 났다.
일이 있어서 밖에 외근을 다녀오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점심 때가 되어서야 나타나서 인사하냐며 뭐라 하셨다.
오자마자 바로 인사를 해야지, 사람은 인사가 기본이라며 몇 분의 훈계를 들었다.
뿐만 아니라, 옷도 단정하지 못하면 쓴 소리를 해댔다.
한번은 치마를 입고 갔는데, 우중씨의 눈에는 그 옷이 단정하게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여자는 자신의 몸을 잘 단속해야 하는데, 치마가 주렁주렁 하다며 뭐라 하셨다.
처음에는 왜 그러지? 라는 생각을 했는데, 겪어 볼수록 우중씨는 옛날의 삶의 방식에 익숙해져 있었다.
치마도 무릎 아래로 내려온 것 입어라,
걸을 때도 천천히 걸어라.
머리도 하나로 묶어서 단정하게 하라.
인사도 공손하게 하라.
하루는 내가 웃으며 우중씨 같은 시아버지 만났더라면 큰일 날 뻔 했어요.
라고 했더니 왜? 이런다.
아직도 전통적인 삶을 고집 하시쟎아요..
우중씨는 옛 것이 좋은 거야.
지금의 젊은이들이 걱정이야.
여자가 너무 드세면 안되.
남자를 존중하고, 대접할 줄 알아야 되는 거야.
그래야 남자도 밖에서 일을 잘 하고 들어오는 법이고,
남편에게 잘해야 되..
라는 말을 했다.
남편 밥도 안 챙겨주고, 큰소리 떵떵 치는 여자들은 못써..
여자들이 보면 기가 막힐 노릇이겠지만, 나는 한편으로 맞는 말이라 생각했다.
시대가 바뀌어서 여자도 사회생활을 한다지만, 그 집안의 가장을 존중하라는 말이 맞는 말이었다.
어쩌면 살아온 삶의 방식이 다르지만 우중씨의 한마디 한마디는 큰 가르침을 주었다.
그날 이후 나는 헐렁한 치마와 짧은 치마를 입지 않는다.
걸을 때도 팔자걸음이 아닌 몸에 긴장을 하고 걷게 되었다.
특히 우중씨가 볼 때면 더욱더 말이다.
우중씨는 그런 나를 보면서 우리 간호사가 최고야..라며 엄지척을 해준다.
나에게 가르쳐준 예절과, 옛 문화는 산 증인과도 같다.
한 번씩 우중씨에게 가서 옛날에는 어떻게 했어요? 라고 물어본다.
그러면 알지도 못하는 이야기를 해댄다.
지금은 아스팔트로 변했지만 예전에는 배를 타고 와서 물건을 사서 다녔다는 이야기부터 가마솥에 추어탕을 끓어셔 나누어 먹었다는 이야기까지 다양하다.
그런 우중씨에게 지금의 도시는 어쩌면 이기적이고 폐쇄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풍족한 삶과 냉정한 현실은 옛 문화와는 또 다를 테니 말이다.

우중씨는 오늘도 나에게 큰소리로 물어본다.
남편 밥은 해주고 왔냐고 말이다.
오늘은 웃으며 빵과 우유를 줬다고 했더니 일찍 일어나서 밥을 해야지..
라며 또 한소리를 들었다.
우중씨의 화낸 표정도 어쩌면 다 나를 위한 거라 생각하니 웃음이 나온다.
우리의 산 증인인 우중씨가 건강히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오늘은 우중씨가 파스 좀 붙여 달라며 윗옷을 벗으셨다.
아직도 근육질의 몸매에 배가 나오는 모습을 보며 나는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순수하고, 귀여운 우중씨의 모습이다.
나이가 먹으면 다시 아기가 된다는 말이 맞는 말이었다.
우중씨의 허리에 파스를 붙이고 한마디 쏘아 붙였다.
아프면 어떡해요.
100세 넘어서 까지 살려면 몸 관리 잘해야죠.
그랬더니 운동을 심하게 해서 아픈 거라며 웃는다.
아직도 이 팔 청춘인 우중씨를 보며 내 몸 관리나 잘해야 겠다.
몸 나이는 우중씨보다 내가 더 늙어 보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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