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멘시아문학상 수기부문 장려상] 내게 남은 마지막 하루②
[디멘시아문학상 수기부문 장려상] 내게 남은 마지막 하루②
  • 천정은 작가
  • 승인 2021.10.05 15: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천정은 작가
천정은 작가

Part2. 주성씨의 추억에 잠긴 하루

주성씨를 처음 만난 건 내가 이곳에 온지 3개월 정도 됐을 때였다.
아들 손을 잡고 주성씨는 낯설은 표정으로 들어왔다.
이곳이 뭐하는 곳인데? 라며 당황하는 기색이다.
이곳 평균연령이 80대라면 주성씨는 60대 후반정도 되 보였다.
정확한 나이를 알고 난후, 주성씨에게 어르신이라는 표현보단 오빠라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이곳 선생님들의 나이가 50대 후반이니깐 오빠라는 말이 더 어울릴 법 했다.
보호자분과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주성씨의 과거를 알 수 있었다.
수자원공사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했던 주성씨는 착실한 가장이자 아빠였다.
착실하게 번 돈으로 아파트도 사고 땅도 샀다.
큰아들 장가 갈 때 집까지 해줄 정도로 능력 있는 아빠였단다.
무엇하나 모르는 것 없는 똑똑한 주성씨는 직장에서 퇴직 할 때까지 이름을 날렸단다.
상장과 각종 트로피는 지금도 거실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 주성씨는 퇴직 후 아내가 세상을 떠나면서 술로 하루하루를 살았단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아내가 저 세상으로 가면서 주성씨는 살아갈 힘이 없었다.
하루라도 술이 없으면 견딜 수 없는 시간들이었다.
3년 넘게 술과 친구가 되면서 주성씨의 치매가 시작되었다.
알코올성 치매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 순간 몰라..아무것도 몰라..라는 대답만 한다는 것이다.
주성씨가 이곳에 잘 적응하기 위해 우리는 주성씨의 손을 잡아주었다.
주성씨의 소개 시간이 되자, 주성씨는 쑥스럽다는 듯이 앞으로 나갔다.
이름을 묻자 제 이름은 몰라요...아저씨라고 부르세요.
띠가 무슨 띠 에요? 띠는 허리띠요..
고향은 어디세요? 엄마 뱃속이요..
라며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뿐만 아니라, 주성씨는 무슨 수업이든 소극적이었다.
아니 모른다고만 했다.
글자를 읽어보라고 해도, 숫자를 읽어보라고 해도 무조건 모른다고 했다.
자신이 사는 아파트도 모르고, 자신은 할 줄 아는 게 없다고 했다.
그런 주성씨 에게 다가가기 위해 나는 노력했다.
한번은 주성씨에게 일이 너무 많아서 그러는데, 이것 좀 가위로 오려 줄 수 있을까요?
저 혼자 하기엔 너무 벅차서요..라며 도움을 청했다.
처음엔 머뭇거리며 가위질 못한다고 했다.
나의 절실한 눈빛을 보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가위질을 시작했다.
얼마나 잘 오리는지 그때 나는 주성씨가 입버릇처럼 모른다고 하는 건 사실 습관적인 말버릇이라고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사자성어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잘 모르겠다며 머뭇거리자, 주성씨는 이런 뜻이라며 정확히 맞췄다.
주성씨가 모른다는 건 일종의 겸손함이 아닐까?
주성씨는 모든 어르신에게 이렇게 인사한다.
복 많이 받으십시오. 건강하게 오래 사십시오..
어쩌면 자신의 아픔을 그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늘 밝은 척 말을 하는 게 아닐까?
주성씨는 자신보다 연세 드신 어르신들에게 늘 손을 내민다.
잘 걷지 못하는 어르신을 부축하기도 하고, 간식이 나오면 늘 먼저 챙긴다.
과거에 주성씨는 정말 예의바른 분이였을 꺼라 생각했다.

며칠 전에는 나의 가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내가 한 달에 한번 건강교실 수업을 하는데, 내 눈을 보는 게 아니라 가슴을 보니 당황스러웠다.
주성씨에게 왜 제 가슴을 쳐다보냐며 물었더니, 그제야 웃으며 미안해요.
일부러 볼려고 한 게 아니고, 가슴에 영어가 적혀져 있어서 그걸 읽느라고요..
라며 쑥스러워했다.
괜한 오해를 한 나는 주성씨에게 뭐라고 적혀있나요?
라고 물었더니, 정확하게 대답했다.
You are a beautiful person.
발음도 유창해서 깜짝 놀랬다.
내가 웃으면서 앞으로 영어 적힌 옷만 입고 다니겠다고 했더니, 주성씨는 씩 웃으며 그럼 간호사 가슴만 쳐다보고 있어야겠는데요?
라고 했다.
치매 환자라고 하기엔 농담도 재치도 뛰어났다.
주성씨는 한때는 공무원으로 과장까지 지냈던 사람 이였다.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면 웃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과거보다 현재를 잘 살아야 한다고 말이다.
한 번씩 내 고민 상담까지 해주는 고마운 분이다.
어느 날, 나는 주성씨에게 내 고민을 털어놓았다.
하고 싶은 건 많은데 무얼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정확히 모르겠다고 했다.
주성씨는 심각하게 듣더니 나에게 열심히 살다보면 기회가 오지 않겠어?
라고 말했다.
그 누구도 나에게 해주지 못한 말을 주성씨는 서슴없이 해줬다.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해봐라.
이것저것 재지 말고 말이다.
준비된 자에게 기회는 올 거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그때부터 주성씨의 이야기를 책으로 쓰고 싶어졌다.
열심히 책으로 쓰다보면 어느 날 출간할 날이 올 꺼라 생각하면서 말이다.
주성씨는 아들과 며느리와 함께 살고 있다.
손자손녀도 3명이라서 집에 가면 정신이 없단다.
자신도 손자들과 놀아줘야 해서 하루가 금방 간다며 웃었다.
그런데,손자들이 늘 할아버지 옆에 오는 건 아니란다. 그래서 방에서 혼자 있을 때가 더 많다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잠시 바깥 바람이라도 쐬라고 했더니 자신은 길치라서 안 된다며 웃는다.
사실 주성씨는 한 번씩 길을 못 찾아서 헤맨다.
다른 어르신과 달리 주성씨는 아침에 혼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주차장으로 내려온다.
우리는 주성씨를 지하 주차장에서 기다린다.
몇 번의 연습 후에 주성씨는 지하 주차장까지 오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런 어느날, 주성씨를 지하주차장에서 기다리는데 주성씨가 보이질 않는다.
주성씨를 찾기 위해 이곳 저곳을 헤매다가 1층에서 멍하니 서있는 주성씨를 보았다.
주성씨 지하에서 만나기로 했쟎아요?라고 묻자, 주성씨는 여기가 지하가 아니냐며 당황했다.
내가 분명히 지하 1층을 눌렀는데, 왜 이곳이 나왔냐고 말이다.
아마도 같이 탄 분이 1층에서 내리자, 주성씨도 따라서 내린 듯 보였다.
주성씨는 방향감각 없고 이곳이 어디인줄도 모른다.
그렇게 주성씨를 찾고 나서야 나는 웃으며 지하랑 1층이랑 잘 기억하세요..라고 말했다.
주성씨는 이곳이 이곳 같고, 저곳이 저곳 같고 다 비슷비슷 하다며 웃었다.
다 똑같이 생겨서 뭐가 뭔지 모르겠다고 말이다.
아파트에 사는 게 좋은 게 아니라며 차를 타고 가는 내내 도시생활에 싫음을 내색했다.
도로마다 차로 가득차고 똑같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 우리나라 환경이 걱정된다며 말이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문제점을 주성씨는 술술 풀어내고 있다.
자신은 퇴직 후 시골에 사는 게 꿈이었는데, 그 꿈조차 이루지 못했다며 씁쓸해 했다.
우리 복지관 뒷 텃밭에는 상추, 오이, 포도, 깨를 심었다.
주성씨는 한 번씩 텃밭에서 나에게 이것저것 설명해줬다.
자신이 살고 싶었던 시골 냄새를 여기에서만이라도 느꼈으면 좋겠다.

아침마다 혈압을 재면 주성씨는 웃으며 언제 죽을려나? 알 수 있냐고 말이다.
웃으며 말하지만, 주성씨의 가슴에도 아픈 구멍이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쓰였다.
어느 날 주성씨는 점심시간에 멍하니 창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보통 점심시간에 물리치료를 하거나 운동을 하지만, 주성씨는 의자에서 쉬고 싶다고 했다.
그날은 여느 날과 달리 비가 많이 왔다.
멀리서 물리치료를 하면서 주성씨를 보니 지갑에서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궁금해서 물었더니 자신의 애인 사진을 봤다고 했다.
나는 애인 있냐고 물었더니, 애인 있으면 안 되지..
땅속에 있는 내 마누라가 달려올지 모른다며 웃었다.
그러면 누구냐고 물어봤더니, 가족사진이라며 보여줬다.
자신의 마누라, 주성씨, 아들, 딸 4가족이 찍은 단란한 추억 사진 이였다.
주성씨는 지금까지도 몇 십 년 전 사진을 지갑에 넣고 다녔다.
어쩌면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자신만의 추억을 말이다.
오늘은 비가 와서 더 생각이 나냐고 묻자, 소주에 파전이 더 생각난다며 대답을 회피했다.
그날따라 주성씨는 보고 싶은 사람이 생각났던 게 아닐까?

우리 센터는 분기마다 야외나들이를 간다.
직원 한 명당 두 명씩 짝이 된다.
한번은 주성씨와 내가 짝꿍이 되었다.
나는 주성씨에게 길을 잃으면 안 되니 내 손 잡고 다녀야 한다고 했다.
주성씨는 간호사 남편한테 두들겨 맞는다며 손을 안 잡겠다고 했다.
간호사 남편한테 싫은 소리 듣기 싫다면서 말이다.
나는 괜챦다고 억지로 손을 잡았지만 주성씨는 쑥스러운지 아니라며 잘 따라 간다고 말했다.
그날은 식물원 구경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중이였다.
주성씨는 화장실을 가고 싶다며 잠깐 갔다 오겠다고 했다.
나는 주성씨에게 화장실 앞에 서 있을 테니 다녀오라고 말했다.
몇분 정도 기다리는데 다른 분이 목이 마르다며 물 좀 달라고 했다.
마침 사무실에 정수기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 물을 떠서 달려왔다.
화장실에서 주성씨가 나왔을 생각에 부랴부랴 달렸다.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주성씨가 나오질 않았다.
순간 나는 뭐지? 라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남자 화장실에 들어갔다.
주성씨를 외치며 찾아봤지만, 주성씨는 보이지 않았다.
순간 화장실에서 볼일을 본 많은 남자들이 나를 이상한 사람인 양 쳐다봤다.
나는 주성씨를 외치며 부랴부랴 뛰었다.
식은땀이 나며 당황스러웠다.
5분가량의 시간이 흘렀을 때쯤 주성씨는 화장실의 뒤쪽에서 서있었다.
알고 보니 화장실 문이 앞문 뒷문이 있었던 거였다.
그날 나는 주성씨를 보며 얼마나 찾았는 줄 알아요? 라고 말했다.
주성씨는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냐며 그 순간에도 농담을 했다.
간식 먹는 시간에도 늘 나 먼저 챙겨주는 자상함에 놀랐다.
본인 배도 고플 터 인데, 나 먼저 먹으면 자신도 먹겠다고 했다.

그날 저녁에 집에 와서 생각했다.
늘 집에서는 내가 뒷전인데,..
나보고 먼저 먹으라며 챙겨주는 주성씨를 보며 그날은 웃으며 일기를 썼다.
자신은 나중에 먹을 테니 많이 먹고 힘내라며...
어쩌면 주성씨는 나의 마음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모른 척 할 뿐이지..
주성씨가 핸드폰이 생긴 후부터는 한 번씩 전화벨이 울린다.
사실 주성씨도 과거에는 휴대폰이 있었는데, 퇴직 후 필요가 없어서 아들을 줬다고 했다.
아들은 주성씨가 술로 살면서 휴대폰이 있어도 받지 않았다고 했다.
다시 주성씨의 손에 휴대폰이 왔을 때는 주성씨는 옛 기억을 되새이며 전화부를 살펴봤다.
전화부를 보면서 직장에서 같이 일했던 직원들이라며 몇몇 이름을 읽었다.
몇일 후 주성씨의 휴대폰 소리가 울리며 전화를 받는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죠?
나는 잘 지내고 있어요.
복 많이 받으시구요.
그래요..언제 얼굴한번 봐요..
라며 간단히 말하고 끊는다.
누구에요? 라고 묻자 직장동료였다면서 이 친구는 일을 참 잘했다며 칭찬을 했다.
나는 웃으면서 동료와 소주 한잔 해야죠..라고 묻자, 주성씨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렇게 말했다.
나도 소주 먹고 싶죠..
내가 집에 들어가면 못 나와서 그렇쵸.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있어야죠..
보고 싶은 동료를 볼 수가 없다.
주성씨는 잠시 얼굴에 그늘 빛이 돌더니 이내 전화를 주머니에 넣어버린다.
동료는 주성씨의 상태를 알까?
멋진 과장님으로 퇴직한 주성씨만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주성씨는 동료와 함께한 추억을 되새기며 그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때는 조직을 이끄는 과장님이였는데, 지금은 추억만을 간직하고 있다.

주성씨의 전화벨 소리는 몇 일에 한 번씩 울렸다.
늘 전화를 받으며 밝게 인사를 했고, 끝인사는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 말한다.
내가 대신 이야기 해주고 싶었다.
주성씨는 당신과의 추억. 소주가 그립다고..
당신들과 함께 한 시간을 소중하게 간직한다고..
다만 지금은 얼굴을 볼 수 없다고..
아니 어쩌면.. 앞으로 못 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주성씨는 지금 자신의 아파트에서 지하 주차장 까지 내려오는 것도 몇 번의 연습을 했다.
한번씩 1층에서 내려 헤매일 때도 있지만 말이다.
혼자 아파트 밖 세상을 나가본 적이 없다.
나는 그런 주성씨에게 아들과 산책도 다니세요..
라고 말했더니 주성씨는 웃으며 아들은 애 셋 키우느라 정신없어요.
아들과 며느리는 애 셋 돌보느라 나까지 짐이 되면 안되요..라고 했다.
자신이 가만히 있어 주는 게 도우는 거라고 말이다.
며느리는 반찬 잘하나요?
시아버지에게 맛있는 거 많이 해주나요?
라고 묻자 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단다.
주성씨는 알고 있다.
자신의 사정을 말이다.
주성씨는 한평생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며 살았던 가장이였다.
공무원으로서 꼬박꼬박 적금하여 안정된 생활을 했다.
아들이 장가가던 날 작은 집을 마련하라며 도움을 줬다.
재태크를 위해 사둔 땅도 지금은 아들명의가 되었다.
한번은 웃으면서 내가 과거에 땅 사둔 게 지금은 값이 많이 올랐다면서 자신은 재테크를 잘한다며 자화자찬을 했다.
노후에 마누라와 조용한 곳에서 살려고 사둔 땅이라면서 말이다.
지금은 아무 필요가 없다며 아들에게 다 줬다고 했다.
한평생 헌신한 주성씨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할까?
자신의 발로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주성씨의 마음은 어떨까?
가슴이 먹먹하다.
똑같이 사는 하루가 누구에게는 자유를 ..누구에게는 감옥임을 느끼는 하루였다.
주성씨가 세상 밖으로 조금씩 나오도록 도와주고 싶다.

오늘은 산책을 가는 날이다.
나는 주성씨의 손을 잡고 복지관 옆 한동네를 돌았다.
여기는 수력발전소구요,,여기는 경찰서구요..라고 설명하자, 주성씨는 입 아프겠다며 조용히 하란다.
그렇게 주성씨는 조금씩 세상 밖으로 나왔다.
나도 한때는 이런 곳에서 일했어요..라며 수줍게 말하는 주성씨다.
주성씨의 눈에 세상이 조금은 아름답기를 바래본다.
조금이나마 자유의 시간이 되었기를 말이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