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멘시아문학상 수기부문 장려상] 내게 남은 마지막 하루①
[디멘시아문학상 수기부문 장려상] 내게 남은 마지막 하루①
  • 천정은 작가
  • 승인 2021.10.04 17: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천정은 작가
천정은 작가

저는 세아이를 키우는 육아맘이자 18년차 간호사입니다.
그리고 책 두권을 출간한 작가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아픈 기억들을 안고 살아갑니다.
저 역시도 아프고 힘든 시간들을 겪으면서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새벽 5시 찬물로 세수를 하면서 독서와 글쓰기를 꾸준히 했습니다.
그 결과 책 2권을 출간했고, 이번에 디멘시아 문학상 장려상의 영광을 안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삶보단 나 자신을 위해 사는 삶이 행복함을 알고 있기에 저는 오늘도 열심히 노력중입니다.
간호사로서 복지관의 치매센터에서 근무를 하면서 자신의 현재 모습도, 과거의 기억도 알지 못하는 어르신들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인생 별거 아니야..라는 치매 어르신의 말 한마디를 통해 저는 인생을 다시 살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들도 한때는 잘나가던 사람들이었고, 최고인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아무도 앞날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더욱더 오늘 하루를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야 합니다.
제가 쓴 글을 뽑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 한걸음씩 성장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무엇보다 디멘시아 문학상을 통해 글쓰기에 더욱더 자신감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상을 계기로 과거의 저의 소심하고 자신감 없었던 시간들을 버리고 조금은 당당한 사람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Part1. 경아씨의 부지런한 하루

아침 일찍 노인센터를 가장 먼저 오는 경아씨다.
노인센터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출입문 두 개의 비밀번호를 눌러야 한다.
나는 신발장에 신발을 갈아 신으면서 벌써 센터에 와있을 경아씨를 생각한다.
여기 처음 근무한날, 나는 경아씨의 외모를 보며 놀랬다.
키가 170쯤 되 보이고, 머리는 셋팅 퍼머에 몸매 또한 날씬했다.
젊은 외모에 출중한 미모 덕분인지 첫날 경아씨 에게 뭐라 말하기가 어려웠다.
혈압을 재기 위해 경아씨에게 다가갔을 때, 밝게 웃으며 새로 오신 간호사 인가 봐요. 라고 반갑게 맞이해주기 전까진 말이다.
경아씨에 대해 차츰 알아갈 쯤, 경아 씨는 현재 남동생 집에 살고 있다고 했다.
한마디로 올케네 집에 같이 사는 거였다.
누구나 아픈 과거를 가슴에 짊어지고 살아간다.
경아씨의 가정 사를 남동생에게 들을 기회가 있었다.
누나를 닮은 남동생 역시 훤칠한 키에 중년의 아저씨라고 하기엔 외모가 뛰어났다.
남동생은 센터로 와서 누나의 모습을 보면서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 누나는 과거가 화려한 사람이었어요.
매형은 자신이 일군 회사의 ceo로서 한때 아주 잘나가는 사람 이였다고 한다.
누나는 사모님 소리를 들으며, 주말에도 골프에, 테니스에 못하는 운동이 없었단다.
지금의 몸매를 유지하게 된 것도 과거에 하루도 쉬지 않고 수영을 했기 때문이란다.
사모님이라는 호칭에 걸맞게 자신의 이미지를 가꿔야 한다면서 말이다.
요리 학원 다니면서 요리도 배우고, 취미로 미술까지 공부하면서 그녀는 만능 엔터테이너가 되었다.
주위 사람들은 도대체 못하는 게 뭐에요? 라고 물었지만, 경아씨의 욕심은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남편과의 수준을 맞추기 위해 뒤늦게 육아를 하면서도 대학원에 진학했다.
경아씨는 딸 한명을 키우면서 틈틈이 공부를 했단다.
경아씨는 대학원 졸업을 하던 날, 학사모를 쓰고 활짝 웃으며 자신의 미래가 탄탄대로라 생각했다.
욕심대로 모든 퍼즐이 다 맞춰질 꺼라 생각했다.
늘 밝은 미래일 꺼 같았던 경아씨 에게 인생의 가장 큰 아픔이 다가왔다.
자신이 사랑했던 남편이 어느 날 회사에서 쓰러졌다.
사업이 잘되는가 싶더니, IMF로 인해 큰 타격을 받았다.
몇날 몇일 견디다가 마지막 회사 출근 날 남편은 심장마비로 손 쓸 수도 없이 저 세상으로 떠났다.
119가 도착하고 심장마사지를 하면서 병원으로 갔지만, 이미 늦었다.
경아씨가 그 소식을 듣고 병원에 갔을 때는 경아씨는 넋이 나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자기 곁에 영원히 있어줄 거라는 신랑이 심장마비라니..
이 자리까지 오기 위해 밤낮 가리지 않고 회사를 일군 사람인데..
늘 웃으며 직원들 먼저 챙긴 사장 이였는데..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늦게 들어올 때는 편의점에 들러 경아씨가 좋아하는 야식을 사들고 온 자상한 남편 이였는데..
바쁜 와중에도 하루 휴가 내어 딸아이를 위해 놀이동산에서 밤늦게까지 놀아준 재미있는 아빠였는데..
경아씨는 그 자리에서 넋을 잃고 쓰러졌다.
몇 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경아씨는 믿을 수가 없다.
지금까지 온 시간들..내 곁에 있어준 사람..영원할 것 같은 순간들을 말이다.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
자신의 삶이 한순간에 바뀌었다.
아침에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그냥 이대로 죽기를 바랬다.
하지만, 사랑하는 딸아이를 보면서 경아씨는 마음을 추스렸다.
하루 종일 울고만 있을 수도 없었다.
그렇게 경아씨는 딸아이를 위해 이 악물며 살았다.
딸 아이 결혼식 때까지만 이라도 살아야겠다고 말이다.
딸아이가 스튜어디스가 되고 싶다고 말한 어느 날, 경아씨는 딸아이의 꿈을 위해 열심히 뒷바라지 한다.
가슴 아픈 상처를 한곳에 남겨둔 채 말이다.
드디어 경아씨의 딸이 스튜어디스에 최종 합격한날, 경아씨는 울며 하늘에 있을 남편에게 이야기 한다.
여보, 고마워요.
당신이 사무치게 그립네요
그리고 경아씨는 딸에게 이렇게 이야기 한다.
딸아..세상을 살다보면 좋은 것만 있을 순 없어.
직장 생활하다가 너무 힘들더라도 잘 견디렴..
강하게 살아야 한다.
경아씨의 딸은 서울에 원룸에 자리를 잡고 첫 직장으로 출근한다.

이제 남은 숙제는 경아씨 혼자 뿐 이다.
하루 이틀 기억력은 쇠퇴해가고, 인지기능이 떨어져 가는 경아씨다.
더 이상 혼자 두기엔 의식주 해결이 되지 않는다.
밥통이 어디에 있는지, 쌀에 물을 얼마나 넣어야 하는지..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물을 잠그지 않고 나온다.
옷장은 어디에 있는지, 옷을 왜 갈아입어야 하는지.
남동생은 그런 누나를 더 이상 혼자 둘 수가 없었다.
그렇게 부산 동생네 집으로 내려온 경아씨는 모든 게 낯설었다.
올케와 남동생 집에서 할 줄 아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다.
누군가가 밥을 차려 줘야 했고 텔레비전을 보며 멍하니 방에서 하루를 보낸다.
밖을 나가고 싶지만, 엘리베이터 타기가 무섭다.
자신이 몇 층에서 사는지, 몇 호인지 알 수가 없다.
올케에게 몇 마디 말을 해보지만, 대화가 되질 않는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바쁘게 살아야 하는 올케에게 경아씨는 더 이상 말을 붙이기가 어렵다.
사실 남동생도 몇 달 전 회사를 관두고 다른 일자리 구직중이다.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는 올케를 보면서 경아씨는 눈치만 보인다.
몇 일 후 남동생과 올케는 경아씨를 데리고 복지관 소속 노인요양센터로 왔다.
하루 종일 혼자 있느니, 돈이 들더라도 이곳에 보내는 게 더 나을 거란 생각 때문이였다.
그렇게 경아씨는 이곳에 오게 되었고, 하루의 시간표대로 잘 따라왔다.
아침 8시 30분부터 등원을 하는 게 원칙이지만 경아씨는 그럴 수가 없다.
올케와 동생이 일하러 새벽 일찍 나가야 했고, 밤늦게 들어왔다.
우리는 경아씨의 집에 새벽에 데리러 가고 가장 늦은 시간에 모셔다 드린다.
경아씨는 집밖에 나오는 것도, 집안에 들어가는 것도 모른다.
차를 지하에 대고 같이 경아씨의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를 탄다.
경아씨 집이 몇층이죠?
저희 집 몰라요..15층인가?18층 일꺼에요..
사실 경아씨 집은 20층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몇 년을 반복했다.
경아씨는 치매를 진단받았다.

내가 출근을 할 때쯤 경아씨는 책상위에 무언가에 열중하는 모습이다.
안녕하세요? 라고 반갑게 인사를 하면 경아씨는 나에게 달려와 예쁜 언니 왔네 라고 말한다.
사실 여기서 일하면서부터 나는 일부러 오버하고 장난도 잘친다.
내가 지금껏 살아왔던 환경과는 너무 달랐다.
병원에서는 출근과 동시에 분주히 일해야 했기에 그 누구와도 눈 마주치며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반면, 이곳에서는 여유롭게 인사하며 반가움을 몇 번이곤 나타낸다.
예쁜 언니라는 말에 나는 웃으며, 예쁜 경아언니는 지금 무얼 하고 계세요?
라고 물어보면 수줍게 대답한다.
동화책을 똑같이 필사하는 중인데 글씨가 안 예쁘다며 쑥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책상에 놓인 노트를 보며 나는 한껏 오버하며 이야기 한다.
어머머. 글씨를 너무 잘 썼네.....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큼직한 글씨와 칸에 딱 맞게 써놓은 사람은 경아씨 밖에 없을 꺼라고 말이다.
수줍게 웃는 경아씨는 한껏 자신감에 올라, 다음 페이지도 적어 볼께요.라고 말한다.
그러면 나는 커피 두 잔을 타와서 경아씨 앞에 앉아서 묻는다.
오늘 적은 내용은 뭐에요?
아..제목 말하는 거에요?
백설 공주라고 적혀있네요..
글자를 아주 잘 읽는 경아씨다.
내용을 물어보면 얼버무리며 글자에만 열중한다.
오늘의 하루를 경아씨는 필사로 시작한다.
다만 내용은 잘 모르지만 말이다.
내가 백설 공주에 나오는 등장 인물을 말하자 경아씨는 기억이 난 듯 대답했다.
일곱 난장이..사과..마녀.. 기억나요...
어릴 적 읽었을 동화내용을 어렴풋이 기억해 낸다.
어쩌면 그 누구보다도 더 똑똑했을 과거의 기억을...
하나씩 끄집으며 경아씨는 수줍게 미소를 짓는다. 
7시 30분에 센터에 도착해서 경아씨는 다른 사람들이 올 때까지 필사도 하고, 색칠공부도 한다.
늘 활짝 웃으며 반겨준 경아씨에게 나는 고맙다.

9시정도가 되면 어르신들을 모시고 차량이 들어온다.
경아씨는 나이에 비해 몸이 건강하다.
걷는 것도 달리기도 무척 잘한다.
다른 어르신들이 넘어지기라도 할까봐, 자신의 손을 내밀며 꼭 잡고 들어간다.
뿐만 아니라, 화장실을 찾지 못하는 어르신에게 늘 손과 발이 되어 준다.
연세 드신 어르신을 위해 물을 갖다드리고, 신발도 갈아 신겨준다.
다만, 순간순간 기억을 하지 못해서 당황하며 안절부절 할 때도 있지만 말이다.
한번은 어르신 한분이 경아씨 물 좀 갖다 주세요 라고 말했다.
경아씨는 언제나 처럼 네~ 제가 갖다 드릴 께요..라며 컵에 물을 따랐다
그리고 돌아서서는 물을 누가 갖다 달랬죠?
라며 물을 찾지 않는 어르신 앞에 갖다 드렸다.
그 순간을 잊어버린 것이다.
물을 찾았던 어르신은 왜 물을 안주냐며 경아씨에게 언성을 높였다.
경아씨는 순간 당황했다.
아..물 갖다 달라고 했었죠?
물을 따르기는 했지만, 많은 사람들 중에 누가 자신에게 말을 했는지 모른다.
경아씨는 순간의 기억을 하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늘 웃으며 제가 물 갖다 드릴게요. 라며 물 컵에 물을 따른다.
한번은 경아씨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경아씨는 여보세요..라고 말하며..응..응..응
이라고만 대답했다.
글쎄...기억이....안나..
그 뒤로 말이 없다.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경아씨 에게 누구한테 전화가 왔어요?
라고 묻자 경아씨는 자신의 초등학교 동창이라며 선희 라는 친구라는 것이다.
경아씨는 선희 라는 이름을 되새기며 글쎄..기억이 안 난다고만 말했다.
상대방은 반가운 마음에 이것저것 추억을 꺼냈지만, 경아씨는 기억이 날 듯 말 듯 하다.
응~응~...이라고밖에 말하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도대체 누구지?라고만 되풀이 했다.
과거 추억의 한 페이지가 사라졌을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경아씨의 친구도 지금의 경아씨의 상태를 알까?
전화를 끊고 경아씨의 친구가 섭섭해 하지 않았기를 바란다.
경아씨를 이해해 주기를....

유일하게 경아씨는 딸 목소리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한 번씩 걸려오는 딸 전화에 반갑게 응대한다.
그리고 전화를 끊고 딸 자랑을 늘어놓는다.
대한항공 스튜어디스라고..
얼굴도 예쁘겠어요..라고 묻자, 웃으며 그러죠.. 엄청 예뻐요.
스튜어디스라는 이름만 들어도 멋진 직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딸아이를 끝까지 책임져야 했던 경아씨의 지난 세월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살기 싫었던 날들도 엄마라는 이름으로 강하게 지켜냈던 세월들을 말이다.
딸아이가 독립을 했을 때 경아씨는 치매의 전조 증상이 나타났다.
기억력이 점점 희미해 졌고, 말수도 급격히 줄었다.
딸아이를 위해 힘든 삶도 버텼을 경아씨의 정신력이 느껴졌다.
한 번씩 경아씨는 딸과의 추억, 자신이 했던 운동들을 이야기 한다.
과거의 소중한 추억을 말이다.
경아씨의 하루하루가 조금은 즐거웠으면 좋겠다.
아침저녁 식사를 복지관에서 하다 보니 경아씨는 내가 약을 챙겨준다.
약을 먹으면서도 무엇 때문에 약을 먹느냐고 물어본다.
머리에 좋은 영양제라고 말해보지만, 경아씨는 알지 못한다.
자신의 인지 기능이 점점 더 떨어진다는 사실을 말이다.
똑같은 위치에 있는 물건도 경아씨는 어디 갔지? 라며 찾지를 못한다.
화장실에 늘 있던 수건도 찾지 못해서 화장지로 닦으며 나온다.
수건이 없다면서 말이다.
지금의 상태에서 더 이상 악화되지 않기를 바래본다.
경아씨의 기억 속에 많은 추억이 지워지지 않기를 말이다.
오늘도 경아씨는 약을 먹으며 웃는다.
이 약을 먹고 얼마나 더 똑똑해 지라고 주는 거냐고 말이다.
경아씨는 마지막으로 차를 타고 집에 간다.
창문 밖을 보며 말이 없다.
경아씨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경아씨의 하루가 어땠을까?
경아씨는 누가 보고 싶을까?
묻고 싶지만,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문다.
많은 추억에 잠겨있을 경아씨를 위해서...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